[만파식적] 고지전


휴전 회담이 진행 중이던 1952년 10월 중부 전선 백마고지에서 중공군 제38군과 한국군 제9사단 사이에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졌다. 열흘 동안 지속된 싸움에서 고지(高地)의 주인이 열두 번이나 바뀌었다. 사상자가 중공군은 1만 4000여 명(포로 포함), 한국군은 3100여 명에 달했다. 한국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곡창지대인 철원 평야를 지켜냈다. 수많은 포탄들이 떨어져 허옇게 드러난 고지 일부분이 누운 백마를 닮았다고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고지를 방어해낸 9사단은 ‘백마부대’라는 호칭을 얻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한 후 1년가량 지난 1951년 5월 휴전 협상이 시작돼 1953년 7월에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2년여 동안 길게 진행된 협상 중에 현재의 휴전선 부근에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참혹한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 당시 고지전을 소재로 배우 신하균·고수 등이 출연한 영화 ‘고지전’이 2011년 만들어져 290만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2020년대 들어 진영·젠더 갈등이 거세지면서 인터넷 뉴스의 댓글창 점령을 위해 싸우는 모습이 고지전에 비유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년 6개월을 넘긴 가운데 두 나라가 연일 상대 영토 점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에 영토를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모처럼 기습을 통해 러시아 쿠르스크주의 100여 개 마을을 차지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어 종전안을 9월 중 미국에 제시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3만 병력을 재배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군 병참기지가 있는 포크롭스크를 노리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 유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을 앞두고 유리한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싸운 한국전쟁의 고지전을 연상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많은 외침과 북한의 남침으로 고통을 겪은 우리는 ‘평화를 지키는 것은 힘’이라는 교훈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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