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밥캣-로보틱스 합병 좌초…도화선이 된 국민연금의 SK 합병 반대 [biz-플러스]

금감원 압박에 주주총회 개최부터 난항  
점차 커진 국민연금의 합병반대 가능성  
주식 가격 떨어져 주매권 방어도 어려워
소액주주들 반발도 끝내 잠재우지 못해

경기 성남 분당구 두산타워 전경. 사진제공=두산

소액주주들의 반대와 금융감독원의 압박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두산(000150)이 합병 계획을 일부 철회했다. 두산은 지난달 11일 밥캣과 로보틱스 합병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한 직후부터 난항을 겪어 왔다. 결국 문제가 됐던 밥캣과 로보틱스 간 주식 교환은 하지 않고 에너빌리티가 가진 밥캣의 주식만 로보틱스로 이전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의 합병 철회는 금감원의 두 번째 정정공시 요구가 결정타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26일 두산 그룹의 합병 관련 증권 신고서에 2차 정정을 요구했다. 지난달 24일 1차 정정 요구 한 달 만에 다시 두산의 신고서를 반려한 것이다. 금감원은 의사 결정 과정과 내용, 분할신설 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 등이 미흡하다고 구체적인 사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합병 계획에 대한 설명 부족보다 합병 비율의 적정성에 대해 문제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이복현 금감원장은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며 '합병가액 10% 할증' 방안을 언급했다. 밥캣의 주식 가치는 10% 할증하고 로보틱스는 10% 할인해 사실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합병 비율을 소액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라는 엄포였다. 두산은 오는 9월 25일 합병안을 처리하기 위한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예정했지만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두산 내부 분위기는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을 반대하면서 이미 요동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는 22일 SK E&S의 주식 1주가 SK이노베이션 주식 약 1.2주로 교환되는 SK 합병안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하고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업계에선 두산에 비해 소액주주의 반발이 덜한 SK 합병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하자 "두산 합병 반대는 불보듯 뻔하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밥캣을 자회사로 하는 두산에너빌리티(034020)의 지분 6.94%를 지닌 2대 주주다. 두산의 지분율은 30.39%에 불과해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다수 소액주주가 반대표를 던지면 합병안 처리가 힘들다. 주주총회를 넘어서더라도 주식매수청구권(주매청) 한도 문제가 나온다. 현재 에너빌리티가 정해둔 매수청 한도는 6000억 원이다.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를 청구하는 액수가 한도를 넘기면 기업은 합병을 철회하거나 매수청 한도를 늘려야 한다. 국민연금의 지분은 혼자서도 에너빌리티의 매수청 한도를 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이 국민연금의 SK 합병 반대 결정을 보고 합병 계획 변경 없이는 구조 개편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의 CI. 사진제공=두산

두산은 합병 발표 후 한 달 반 기간 동안 소액 주주 설득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두산은 본래 두 회사의 주식을 1대 0.63 비율로 교환해 밥캣을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만들려 했다. 연간 1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캐시카우' 밥캣 1주를 2015년 설립 후 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는 로보틱스 0.63주로 바꾸는 방안은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합병이 성사되면 두산의 밥캡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기존 14%에서 42%로 높아져 "회사를 위한 구조개편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 로보틱스의 주가는 모두 급락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주주에게 제시한 매수 가격은 주당 2만890원이지만 현재 주가는 1만7750원(29일 종가) 수준이다. 두산밥캣(241560)과 로보틱스도 매수가격 5만459원, 8만472원에 비해 한참 떨어진 4만2050원, 6만93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주주들로서는 주당 1만 원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주식을 팔고 나갈 유인이 충분하다.


결국 두산은 이날 긴급 이사회를 통해 가장 문제가 된 밥캣과 로보틱스 양사 간 포괄적 주식 교환을 포기했다. 밥캣을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들어 상장 폐지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다. 다만 에너빌리티가 가진 밥캣의 지분을 46.1%을 떼어내 신설법인을 만들고 이를 두산로보틱스(454910)와 합병하는 방안은 그대로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밥캣은 에너빌리티가 아닌 두산로보틱스가 지분 46.1%를 가진 상장사로 변환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사진제공=두산

두산은 에너빌리티가 원전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밥캣을 분리하는 작업까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너빌리티는 이번 개편으로 밥캣에 대한 7000억 원의 차입금을 없앨 수 있다. 두산큐벡스·분당리츠 등 비영업용 자산도 지주사 두산에 매각해 현금 5000억 억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확보한 1조2000억 원을 전부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제작 등 시설 확충에 활용된다. 두산 관계자는 "체코원전 수주 성공 등 사업 확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시설 확대와 연구 개발를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밥캣과 로보틱스는 완전한 합병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모자회사 관계가 되면서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게 회사의 판단이다. 로보틱스는 로봇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네트워크와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춘 두산밥캣를 통해 고객 접점을 늘릴 수 있고 밥캣의 현지 채널 관리 역량과 파이낸싱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길도 트이게 된다. 밥캣은 로보틱스의 역량을 활용해 주력 사업 영역인 건설장비 사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한 무인화·자동화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다. 두산 관계자는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한편 양 사의 시너지를 위한 추가적 방안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시장의 반대가 남아 있는 만큼 두산이 이 반쪽짜리 합병안이라도 성사시키 위해선 향후 주주와의 소통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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