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데이터화…가상세상 속 인간의 '성장' 담아"

■'영원한 천국' 저자 정유정
감정·기억 불멸의 세계 배경
'지루함 극복' 인간 욕망 묘사
특유의 감각 묘사로 몰입감↑

오승현기자


‘서사 놀이’가 궁극의 유희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장르도 소재도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소설가 정유정. 그가 인간의 모든 감각과 기억을 데이터처럼 업로드 해 불멸의 세계에서 살게 된 인물들을 위해 선택한 놀이 역시 저마다의 인생 극장이다.


최근 신작 장편 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펴냄)’을 출간한 소설가 정유정은 30일 서울 마포구의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결핍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라며 “불멸의 세계에서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담았다”고 밝혔다.


루게릭병으로 삼십대 초반에 자신의 몸 안에 갇히게 된 주인공 해상과 하나뿐인 혈육인 동생을 잃고 몸뚱아리 하나만 남은 경주가 자신의 과거 기억부터 감정, 몸의 감각에 따른 반응까지 데이터로 업로드해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는 ‘롤라’라는 세계의 입장권을 두고 보이는 상반된 태도를 다뤄냈다. 정 작가는 “해상의 경우 정신은 존엄성을 갈구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몸이 없어 롤라라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일거리(저마다의 인생극장 ‘드림시어터’ 설계)를 찾고 현실에 건강한 몸이 있는 경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찾는다”며 “둘 다 자신의 삶을 찾으면서 끝나는 ‘성장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오승현기자

모든 감각과 신체 반응을 똑같이 겪을 수 있는 홀로그램 속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때문에 신체를 아바타에게 맡긴 뒤 정신만을 통제할 수 있는 일반적인 가상현실(VR)과는 다르게 인물들의 신체의 반응과 감각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경주가 ‘근육과 신경과 머리가 협응하는 민첩하고 강인한 느낌’을 지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의 신조도 반영됐다. 정 작가 자신이 2012년 암 판정을 받고 38차례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도 운동을 놓지 않았다. 그는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도 하루에 두 시간씩 근력 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했다”며 “석양이 지는 거리를 걸어서 체육관에 갈 때 걸어가는 감각과 제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에 경이로운 순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건 ‘야성(野性)’이라는 한 글자다. 그는 “인간의 모든 것이 데이터로 업로드 되더라도 본연의 기질은 변함이 없다”며 “만약 기질과 대처 방식까지 똑같아진다면 AI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앞에 다가온 고통을 인내할 것은 인내하고 맞서고 넘어설 것은 넘어서는 야성을 깨워야만 스스로 자기답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가상세계가 절반 이상 등장하지만 정 작가만의 날카로운 감각에 대한 묘사가 다시 현실세계에 계속 발 붙이게 해준다. 소설 속에서는 ‘유빙(流氷)’이 부딪히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리고 추위는 앙칼지게 얼굴을 할퀸다. 그는 “험한 날씨를 좋아한다”며 “자연이 세상에 힘을 행사하는 데서 압도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웃었다.


매 작품마다 안 하던 것들을 하나씩 시도하면서 벌써 8편의 장편을 써냈다. 그는 “'악의 3부작'을 내리 썼지만 제 안에도 긍정적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며 “이제야 성취 욕구와 파괴적 욕구의 소설이 4대 4로 동률이 됐는데 다음 작품은 어디로 갈지 지켜봐 달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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