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의 이유 있는 부진 [양석준의 마켓인사이드]

양석준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위원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최후의 보루 외화자산이 미래다’의 저자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뒤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기상청은 9월 첫 주 초반에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특보가 해제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지난해 유엔 사무총장의 말대로 지구는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끓고(global boiling)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2015년 파리협정 때만 해도 지구 기온을 ‘장기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5도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나온 측정 결과들을 보면 이미 그 선을 여러 차례 넘었다고 한다.


수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에 대한 투자가 주목받아 왔다. 투자자들이 환경 등의 사회적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수익률도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펀드 유입액이 2021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더니 마침내 대규모 유출까지 일어나고 신규 설정도 미미하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첫번째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반적인 거시환경이 급변한 것이 1차적 원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그 결과 기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인플레이션 급등에 따른 고금리 여건은 비용 문제를 가중시켰다.


두번째로 기업이나 투자기관들이 ESG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업들도 있었다. 소위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다.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기관들마저도 제 역할을 못했다.


그 심각성이 고조되면서 개선의 움직임이 모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호주에서는 최근 화석연료, 술, 도박 등과 관련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기로 한 공시를 어긴 연기금에 대해 법원이 약 100억 원에 달하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영국에서는 내년에 ESG 평가기관을 규제하고 ESG 등급의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법안을 도입한다고 한다. 미국과 EU는 앞으로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명에 ‘ESG’, ‘지속가능’ 등의 표현을 쓰려면 적어도 80%이상 관련자산에 투자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모두 ESG 투자와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당장에는 ESG 투자나 관련 펀드 출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번째로는 미국의 민주당과 EU의 중도파 중심으로 주도되었던 ESG 정책들이 거부감과 피로감을 확대시키면서 정치 이슈화돼버렸다. 소위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에너지 생산 비중이 높고 보수성향이 높은 미국의 일부 주(洲)들은 보이콧 대상 금융기관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 여파로 블랙록, JP모건, SSGA 등 유수 자산운용사들은 기후행동100+(Climate Action 100+) 같은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은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기후정책 및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당선 시 현 정부에서 도입된 각종 반 화석연료 행정명령이 역전되고 친 기후변화대응 법안인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이 무효화될 수 있다.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반면 해리스 당선의 경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동시에 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더 활발히 동참할 것으로 본다. 참으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극심한 여건 하에서 투자의 방향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대응은 불가역적인 과업이라는 인식은 변할 수 없다. 주요국의 공적연금을 주축으로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다. 스웨덴 국민연금(AP-fonden),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등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포트폴리오 내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현재의 수준에서 절반으로 감축시키려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비록 기후관련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했다고 해서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전면 중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대응투자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에 따라 탄소중립 달성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고려할 때 ESG 규제의 정도, 그리고 그 추진력의 차이 등으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단기적인 변동 요인들에 유의하면서도 전 세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뚜벅뚜벅 계속 가야 할 것이다. 장기적 목표를 향해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