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주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를 대신해 할아버지가 가족 동의 없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며 조언을 구했다.
28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는 할머니를 친 자전거 운전자를 처벌받게 하고 싶다는 손주 A씨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맞벌이였던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반면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에게는 거리감을 느꼈다.
그런데 몇 달 전 할머니가 길을 가다가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무방비 상태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와 부딪힌 할머니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됐다.
A씨 가족은 가정법원에 할머니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고, 할아버지가 성년 후견인으로 지정됐다. 법원은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소송행위를 포함했다. 대리권 행사는 법원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할머니를 들이받은 자전거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됐다.
할아버지는 운전자 측으로부터 합의금 4000만원을 받은 뒤 재판부에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씨는 "저와 다른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합의금을 받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것에 불만이 많다"며 "할머니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자전거 운전자가 처벌받길 바라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송미정 변호사는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해서 결여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제도"라며 "성년 후견인으로 선임된 사람은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한 법률 행위를 제외한 행위를 특별한 제약 없이 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차의 교통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한다"며 "피해자가 원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A씨 할머니의 성년후견인이 할아버지라고 해도 피해자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 여부는 결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형성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문언에 반하는 해석이라는 게 법원 입장"이라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는 피해자의 의사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A씨 할머니처럼) 피해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의 처벌에 대한 의사를 결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