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힘이 무엇인가요?”
“돈이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질문한 이는 해외 미술관의 큐레이터다. 그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냉소적인 짧은 답변에 ‘동의’했다. 외국 갤러리 관계자의 반응도 다를 바 없다. 한 해외 갤러리 디렉터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의 성과가 꽤 좋았는데 구매객의 90%가 한국인이었다”고 귀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가 우리 미술에 가장 인색하다. 그래서 ‘한국 미술의 힘’을 묻는 질문에 정색하고 답해보려 한다.
한국 미술에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별함이 분명 있다. 역사의 힘이다. 전통의 기반 위에서 풀어낸 현대성과 새로운 도전에 한국 미술의 힘이 있다. 이응노(1904~1989)는 대나무 먹그림을 배우다 일본 미술의 기량을 엿본 후 1959년 프랑스로 가 실험적 예술을 섭렵하며 자신만의 추상 양식을 완성했다. 국민 화가 박수근(1914~1965)은 젊을 때부터 경주 남산의 마애불(돌에 새긴 부처)에 관심이 많았고 그 거친 표면을 만들기 위해 기름 섞지 않은 물감을 여러 번 덧바르는 특유의 화풍을 만든 덕에 마치 돌에 새긴 듯한 확고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소 그림에 민족정신과 자의식을 담은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어릴 적 평양의 박물관에서 본 고구려 고분벽화의 느낌을 잊지 않았고 고려자기의 상감기법과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을 응용해 그만의 ‘은지화’를 그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환기(1913~1974)는 한국 미(美)의 ‘구수한 큰 맛’을 대표하는 달항아리 애호가였고 그의 작품 곳곳에 백자가 등장한다. 김환기식 추상의 완성형인 전면점화(全面點畵)는 먹의 번짐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탄생했다.
김환기의 제자이자 사위로 청출어람인 윤형근(1928~2007)은 “추사체의 절제된 추상적 회화미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동양철학에 심취했고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그림에 담고자 했다. 지극히 동양적인 그의 작품에 수많은 해외 컬렉터들이 환호하는 이유다. 1970년대 한국의 추상미술은 서양의 모노크롬이나 미니멀리즘이 갖는 간결함이나 절제된 미학과 사뭇 다르다. 김환기와 윤형근이 그랬듯 전통에 대한 탐색 중에 자연 예찬과 고요한 정신성, 지칠 줄 모르는 수행성이 더해져 이뤄낸 것이 바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은 ‘단색화’다. 전통 종이인 한지(韓紙)의 물성 자체를 파고들었던 ‘묘법’의 박서보, 도자기의 빙열(氷裂) 같은 정상화의 작품, 뒷면에 색을 칠하는 한국화의 배채(背彩)를 응용해 자신만의 ‘배압법’을 발전시킨 하종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우환은 기법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철학으로 한국 미술을 대표한다. 그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융합,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 동서양을 관통하는 철학이 오롯이 담긴 작품을 선보이기에 해외 전속 화랑을 여럿 거느린 국가대표급 작가가 됐다.
역사의식과 사회문제에 대한 탐구는 한국 미술에 강렬함을 더했다. 하나의 민족이 정치적 이유로 나뉜 남북 분단 문제는 한국의 미술가들만이 진정성을 갖고 다룰 수 있는 사회적 이슈다.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 등을 소재로 한 작가들이 여러 비엔날레와 미술관 기획전에 초대받았다.
해외 방문객들에게 우리 미술을 알리려는 노력 만큼이나,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키울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미술 전시도 좋지만 이번 가을에는 고궁으로 눈을 좀 돌려보자. 덕수궁 돈덕전과 덕흥전에서는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무형유산 전통 작품 150여 점이 ‘시간을 잇는 손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갓일·매듭 등 현대에 이르러 명맥이 끊길 위험에 처한 ‘전승 취약’ 전통 기술 20개 종목 보유자의 작품들이다.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현대미술가 등 52명이 어우러진 전시가 펼쳐졌다. 외국인들이 그토록 궁금해 마지않는 ‘한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다. 그런 다음, 우리 미술을 다시 보자. 한국 미술의 힘은 전통의 뿌리, 역사의 줄기 끝에서 핀 다양성에 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우리의 2030 젊은 작가, 4050의 중진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