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영국의 대문호이자 모든 이야기의 ‘원형 서사’를 구축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핵심 문장으로 꼽히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가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의 손 끝에서 재탄생했다.
최 교수는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세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자간담회’에서 “30년 간의 작업 끝에 기존의 셰익스피어 번역과 달리 일본의 영향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작품을 내놓게 됐다”며 “우리 말 특유의 리듬을 살려 일종의 ‘문화 독립’을 이뤘다”고 밝혔다. 우리 말의 리듬을 그대로 살려 번역해 전집을 완간한 것은 국내에서 첫 성과다. 최 교수에 따르면 햄릿의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일본 학자를 통해 ‘사느냐 죽느냐’로 번역된 것이 오랫동안 정석처럼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1989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가르치면서 일본어를 통해 번역돼 우리 말로 읽었을 때 가락과 리듬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제자들에게도 늘 ‘백문이 불여일견’ 대신 ‘백문이 불여일청(聽)’이라고 강조하면서 소리 내 읽어보면서 말의 리듬을 느낄 것을 권유했다. 1993년에는 우리 말의 리듬을 살리는 번역을 위해 민음사와 셰익스피어 전집을 계약한 뒤 30년 간 작업에 몰두했다. 2014년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에도 작업에 매진했다. 번역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는 ‘맥베스’를 꼽았다. 최 교수는 “멕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시적인 인물로 꼽힌다”며 “분량은 햄릿의 4분의 1정도지만 압축, 비유, 상징 등으로 밀도가 높아 의미를 살리면서도 분량을 늘리지 않기 위해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가장 즐겁게 번역한 작품으로는 ‘햄릿’을 꼽았다. 그는 햄릿을 두고 '인간의 마음을 가장 깊고 넓게 표현한 사람"이라며 “셰익스피어는 감정의 진실에 가장 잘 접근한 사람이기 때문에 미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도 인간 본성의 진실에 접근하는 게 특별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번역조차도 인공지능(AI)에 맡기는 시대에 오로지 혼자서 번역 작업을 도맡았지만 그게 그의 큰 자부심이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파악한 인간 심리의 기기묘묘한 깊이와 넓이는 물론 소리에 뜻을 실어서 배열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챗GPT에) 모두 입력할 수는 없다”며 “현재의 알고리즘은 수십가지의 뉘앙스를 다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읽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면의 변화가 찾아온다”며 “셰익스피어 전집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하고 이왕이면 소리 내 읽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