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과 은행권이 ‘가계대출’ 실수요자 보호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최근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침에 따라 실수요자가 혼란과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주재로 진행된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 간담회’에서는 다양한 목적으로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 차주들이 우려를 쏟아냈다.
무주택자로 신규 주택 매수를 진행 중인 한 30대 차주는 “주택 매입을 위해 계약금을 지급하고 은행별로 상품 조건을 비교 중인데 잔금 일정이 10월 말”이라며 “그 사이 추가적인 규제가 더 있으면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40대 무주택 차주 역시 “2022년 주택을 매도하고 내년에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라 이사를 계획 중인데 대출 규제가 지속될 경우 매매를 할지, 전세를 구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결혼 후 최근 첫 집을 마련했다는 30대 차주는 “올 7월 은행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첫 집을 마련했는데 한도를 다소 아슬아슬하게 맞춰놓다 보니 대출이 실행되기 전까지 걱정이 컸다”며 “은행마다 안내하는 내용이 달라 알아보는 과정에도 애로가 있었다”고 했다. 유주택자인 60대 차주는 자녀의 결혼으로 자금이 필요해 생활안정자금 주담대를 신청해뒀으나 최근 대출 문턱이 높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주담대가 아닌 신용대출의 경우에도 신청이 조기 마감돼 불편을 겪는 차주도 있었다.
실수요 차주들의 의견을 청취한 이 원장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확고히 유지할 방침”이라면서도 “대출 실수요를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갭투자 등 투기 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은행 자율적 심사 강화 조치 이전에 대출 신청을 접수했거나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고객 신뢰 보호 차원에서 예외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월평균 약 12조 원으로 추산되는 은행권 주담대 평균 상환액 규모를 감안할 때 실수요자에게 우선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면 대출 규모를 적절히 관리하면서도 실수요자에게 자금 공급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특히 이 원장은 최근 은행들이 유주택자에 대한 주담대·전세자금대출 중단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주택자 대출 중단 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없다는 쪽에 가깝다”며 “간담회에서도 피치 못해 갑자기 대책을 내놓는다면 효과라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고 부동산 쏠림 억제 효과도 없는 것 같다는 부동산 업계 전문가의 의견이 있었는데 이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는데 기계적이고 일률적으로 대출을 금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은행권의 움직임이 당국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며 선을 긋는 동시에 투기 목적이 없는 유주택자에 대한 조치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당국 방침에 따라 은행권은 유주택자인 실수요자에 대한 주담대·전세대출 중단 조치를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은행연합회가 구성한 실무협의체에도 참여해 당국의 고민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대출 심사 강화에 따라 대출 수요가 보험사 등 다른 업권으로 쏠리는 ‘풍선 효과’와 관련해서는 아직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대출 상담이나 신청 등 선행지표를 봤을 때 걱정할 정도의 풍선 효과는 현실화되지 않는 게 맞다”며 “준비나 우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이 막히지 않게 비은행 쪽도 챙겨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