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나 지났다면, 이미 실패한 수사입니다.”
최근 만난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수사라고 해도 (수사 기간이) 통상 3~6개월 사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만큼 앞뒤 재지 않고 죄가 있는지 등 혐의 입증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현직 시절 이른바 ‘특수 수사’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후배 검사들을 향해 쓴소리를 한 것은 검찰의 장기 수사가 자칫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사 대상이 전·현직 최고위층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명품 가방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7월 20일 비공개 대면 조사가 이뤄졌다. 이는 2020년 4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된 지 4년 만이다. 또 지난해 12월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가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고발한 지 7개월여 만에 직접 조사가 이뤄졌으나 검찰은 여전히 김 여사에 대한 기소 등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특혜 채용 의혹’ 수사는 이미 4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도 수년째 지속됐다. 이들 수사를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에서 ‘봐주기’라거나 ‘탄압·보복 수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정치권의 날 선 말들은 검찰을 겨냥한 탄환으로 차곡차곡 장전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지난달 28일 △수사·기소권 분리 △별건·타건 수사 금지 △불구속 수사 원칙 등을 담은 공소청법·중대범죄수사청·수사절차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도 검찰개혁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관련 법안 발의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수사 지연이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한 ‘검찰 개혁’ 움직임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 위기다.
답은 간단하다. 검찰 수장들이 매번 내세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수사하는 것뿐이다. 이미 ‘정치의 사법화’가 법조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른바 ‘묵은장’식 수사는 자칫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되레 수사력 부재로 비치면서 검찰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자승자박’일 수 있다.
검찰은 조만간 권력 교체기를 맞게 된다. 이달 15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후임이자 현 정권 출범 이후 두 번째 검찰 수장의 임명이다.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헌정 역사상 마지막으로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진 조직으로 기록될지 결정은 검찰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