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구조까지 설계…진화하는 AI 신약 개발

■빅테크 주도권 경쟁 치열
구글 딥마인드 '알파프로티오' 공개
특정 단백질에 맞는 최적물질 찾아
빅파마와 수조원대 개발 협력 계약
엔비디아·MS도 염기서열 서비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과 간단한 업무를 넘어 고난도의 연구개발(R&D)을 필요로 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게임체인저’로 떠오르면서 테크기업들의 수요 선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AI 스스로 신약 물질을 찾아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기술을 두고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들의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구글 딥마인드는 5일(현지 시간) 질병 치료 등에 최적화한 단백질 구조를 설계해주는 AI 모델 ‘알파프로티오’를 공개했다.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가 연구자의 약물 후보군 탐색을 돕는 수준이라면 알파프로티오는 약물이 어떤 분자 구조를 가질지 직접 보여주는 게 가능해 AI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신약 개발 기업 갤럭스의 박태용 부사장은 “알파폴드도 선구적이었는데 알파프로티오 같은 단백질 구조 설계 AI는 그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발전”이라며 “신약 발굴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알파프로티오는 질병 원인이 되는 몸속 물질과 같은 특정 단백질과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또다른 단백질, 즉 약물의 분자 구조를 설계해준다. 단백질은 분자 구조에 따라 생체 조직의 성장과 유지, 호르몬 분비나 억제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다. 특정 단백질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 기능이 떨어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이 단백질과 결합해 상호작용함으로써 문제를 없애줄 최적의 물질을 찾는 게 신약 개발의 핵심이다.


알파프로티오는 문제의 단백질 구조와 잘 들어맞을 약물이 어떤 구조를 가질지를 직접 보여준다. 반면 알파폴드는 문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이를 기존의 방대한 신약 후보군과 빠르게 대조한 후 그중 신약으로 쓰기에 최적인 물질을 추려준다. 알파프로티오는 주관식, 알파폴드는 후보군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문제를 푸는 셈이다. 알파프로티오가 절차를 더 간소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알파폴드의 구조 예측 데이터 1억 건 이상을 학습했다.


딥마인드는 알파프로티오의 성능 실험도 했다. 암과 당뇨병 합병증과 관련된 ‘VEGF-A’와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7개의 단백질에 대한 신약 후보물질을 알파프로티오로 도출하고 실제 결합 등 효과를 실험했다. 그 결과 기존의 방법으로 도출한 물질보다 최대 300배 강한 결합력(결합 친화도)을 나타냈다. 또 VEGF-A가 억제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중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딥마인드는 앞서 알파폴드로 신약 개발 기간을 10년에서 수개월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5월 DNA 분석까지 가능한 ‘알파폴드3’를 공개하며 “수년 내 AI가 처음 설계한 약이 환자에게 투여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배성철 UNIST 생명공학과 교수는 “향후 실제 활용 사례들을 살펴봐야겠지만 신약 개발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과학 분야 R&D에 큰 임팩트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딥마인드는 지난달 양자역학 계산으로 분자 주변의 전자들 분포까지 파악해 단백질 접힘 구조 등을 분석할 수 있는 ‘페르미넷’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신약 개발 계열사 아이소모픽랩스는 연초 대형 제약사인 일라이릴리, 노바티스와 각각 최대 17억 달러(2조 3000억 원)와 12억 달러(1조 6000억 원) 규모의 저분자 약물 개발 협력계약을 맺었다.


단백질 구조 설계가 가능한 대표적 경쟁 모델로 2022년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 연구팀의 로제타폴드 디퓨전, 갤럭스의 갤럭스 디자인이 꼽힌다. 로제타폴드 디퓨전은 2021년 사이언스의 최고의 연구성과로 꼽힌 단백질 구조 예측 AI 로제타폴드의 후속모델이다. 갤럭스는 카카오와 LG 등 대기업 투자를 받았고 지난달 LG화학과 협력해 신약 설계 AI를 활용해 항암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갤럭스는 단백질 중에서도 외부 감염물질인 항원에 대항하는 ‘항체 신약’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도 설계 기술을 일부 선보였다. 엔비디아는 기업용 AI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를 통해 저분자 설계를 포함해 단백질 구조 예측과 염기서열(시퀀스) 분석 등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최근 인수합병으로 시가총액 24억 4000억 달러(3조 3000억 원)를 달성한 리커션 등 스타트업에 투자도 단행했다. MS의 에보디프 역시 단백질 설계가 가능하다고 소개됐다. 다만 실제 구조가 아닌 기호의 나열인 염기서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서 딥마인드 등에 비해서는 활용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아마존은 화이자에 AI 플랫폼 ‘복스’를 통한 신약 개발을, 오픈AI는 챗GPT로 모더나의 임직원 업무를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LG AI연구원이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 3.0’에 분자구조를 학습시켜 관련 신약·신소재 분야에 관련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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