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한때 7%포인트나 앞섰던 대선 판세가 다시 초접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등판한 후의 ‘허니문’ 효과가 효력을 다했다는 진단까지 나오는 가운데 10일 오후 9시(이하 현지 시간, 한국 시각 11일 오전 10시) 시작되는 TV 토론이 이번 선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8일 뉴욕타임스(NYT)가 시에나대와 3~6일 벌인 여론조사 결과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해리스 부통령이 47%, 트럼프 전 대통령이 48%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포기를 선언한 직후인 7월 22~24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해리스 부통령은 46%, 트럼프 전 대통령은 48%였다. 이후 해리스는 지지세를 확장하며 페어리디킨스대의 여론조사(8월 16~19일)에서는 50%의 지지율로 트럼프 전 대통령(43%)에 7%포인트나 앞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더니 다시 초접전 양상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캠프의 제이슨 밀러 대변인이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허니문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미국은 개별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해당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인 여론조사 못지않게 경합주에서의 판세가 중요한 이유다. 미 CBS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유거브와 3~6일 최대 격전지로 평가되는 러스트벨트(오대호 인근의 쇠락한 공업 지대)의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3개 주에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스트벨트 중 최대 규모의 선거인단인 19명이 걸려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50%로 동률을 이뤘다. 15명이 걸려 있는 미시간주는 해리스 부통령이 50%, 트럼프 전 대통령이 49%였고 10명이 달린 위스콘신주는 해리스 부통령이 51%, 트럼프 전 대통령이 49%였다.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물가가 꼽히는 가운데 경합주의 주요 도시에서 물가가 특히 많이 올랐다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선벨트(일조량이 풍부한 남부 지역)의 대도시에서 물가가 4년 전에 비해 많이 올랐다”며 해리스 부통령이 불리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경합주 조지아에 있는 애틀랜타, 애리조나의 피닉스는 2020년 대비 물가 상승률이 25%에 달해 같은 기간 미국 전체 평균인 20%를 웃돌았다.
대선을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판세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면서 관심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TV 토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후 첫 토론인 만큼 결과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시에나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8%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답해 해리스 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승기를 잡을 수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NYT는 “해리스를 여전히 궁금해하는 ‘스윙 보터(부동층)’ 수백만 명에게 해리스를 정의할 중대한 순간”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반등 조짐을 보이는 데다 사법 리스크 부담까지 덜면서 한결 여유로운 상황이다. 6일 트럼프의 ‘성추문 입막음 돈’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는 18일로 예정됐던 형량 선고 공판을 대선 이후인 11월 26일로 연기했다. 이번 토론에서 트럼프는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을 자제하고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안정감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 참모들은 그가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감을 표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 부문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낙태권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장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 등의 문제에서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해 공화당의 기존 정책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가 보수층이 반발하자 궤도를 수정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의 ‘우클릭’을 문제 삼을 태세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대선 경선 당시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철회했으며 이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