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에서 열린 ‘싱크 넥스트 24’ 마지막 공연 프로그램 ‘오리지널리(Originally)’. 약 40평(132㎡) 남짓한 공간에 233명의 관객이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중앙의 원형 무대를 둘러쌌다. 평소 좌석의 위치가 무대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 역할을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정석 없이 서서 원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관람할 수 있다는 처음 주어진 자유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이윽고 대형 광목천을 덧댄 스크린 위에 라틴어로 ‘말씀(Dixit)’이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흰 원피스를 입은 한 아이(뮤지컬 배우 임하윤양)가 등장해 라틴어로 정가를 부른다. 고요를 뚫고 나오는 정확한 발성에 관객들이 열심히 눈으로 임하윤 배우의 움직임을 쫓았다. 성경의 창세기 속 만물의 탄생이 시작된 일주일에서 착안한 곡인 우 작곡가의 ‘천지창조(CREO)’에 따라 공연은 자유롭게 뻗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날 공연은 우국원 작가가 참여하는 ‘오리지널리(ORIGINALLY)’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우 작가의 온전한 작품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공연이다. 우 작가의 친누나인 작곡가 우효원의 곡 ‘천지창조(CREO)’가 특별한 형식으로 재창조됐다. ‘공간 음향’ 전문가인 작곡가는 가장 기본적인 소리의 특성을 사람의 특성인 ‘인성(人性)’에서 찾았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소리인 목소리를 비롯해 자연의 소리가 세밀한 것까지 중요하게 다뤄졌다. ‘빛과 어두움’이 생기고 이어 ‘하늘과 물’ ‘땅과 식물’ ‘광명체’로 바통을 이어 받다가 다섯째 날인 ‘물고기와 새’ 파트에 이르자 관객들도 한껏 다양한 감각들을 열어뒀다.
무대의 한 구석에서 연주자가 다양한 방식의 물 소리를 내자 2층의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 연주자들이 부채와 작은 타악기로 새의 퍼덕이는 소리를 더했다. 우 작가 특유의 붓터치가 이에 맞춰 등장하며 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수조를 문지르면서 내는 소리는 고래의 울음소리로 이어졌다. 관객들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연주자로 2층의 오케스트라까지 360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시선의 자유’를 만끽했다. 이어 나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을 가득 채운 장미(우 작가의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차용한 요소)의 이미지들이 화면을 채운 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해 합창으로 어우러졌다.
마지막 날인 ‘안식’에서 다시 임 배우가 등장해 한껏 깊어진 ‘염화미소’를 보냈다. 마지막 파트인 ‘완전함’에 이르자 30여명 합창단원의 합창과 함께 공간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Bona Creo/ Vidit Deus)’의 반복되는 구절 부분에선 관객들이 라틴어 가사를 따라 부르며 흥을 냈다. 놀랍게도 이들은 프로 합창단이 아닌 아마추어 합창단 ‘클라시쿠스’였다. 세종문화회관의 어떤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아우라가 퍼졌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 작곡가는 공연 전체를 이끌어가는 곡과 다양한 공간 음향을 창조하고 우 작가는 공연의 비주얼 요소를 비롯해 시각적 장치 전부에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평소 안부 인사조차 다른 친구를 통해 확인할 정도로 대화가 많지 않은 친남매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 우 작곡가는 “제가 어릴 때 미술을 하고 싶었고 화실을 다니기도 했는데 우 작가가 오히려 음악을 할 것 같았다”며 “음악의 바운더리가 넓어질 수 있는 것처럼 음악과 미술도 통하는 만큼 서로가 다음 단계의 확장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도 확장을 모색 중이다. 그는 “우국원 작가는 캔버스에 벗어나 한계 없는 시도를 희망했고, 저 역시 기존의 합창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고 싶었다”며 “한 자리에 앉아 일방적으로 공연을 듣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체험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게 완전 달라지는 공연에서 해방감을 느꼈으면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도 가능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