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력 문명은 인류의 오만으로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수권(水圈)을 믿지 않으면 더 큰 혼돈이 올 겁니다. 더 늦기 전에 ‘물의 회복력’을 되돌려야 합니다.”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 종말 시리즈 3부작을 쓴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79·사진)이 ‘수력 문명의 종말’에 경종을 울리는 신작 ‘플래닛 아쿠아(Planet Aqua)’로 돌아왔다. 지구 표면의 74%가량을 차지하는 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물의 법적 권리’를 천명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리프킨은 9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3시간 넘게 ‘수권의 위기’를 알리는 데 집중하며 인류가 삶의 방식을 바꿀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2050년이면 인류의 절반이 넘는 47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태적 위협이 높거나 극심한 국가’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시기가 되면 전체 수력발전용 댐의 61%가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강 유역에 위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나일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갠지스강, 중국 황하 등 4대 문명 발상지에서 시작된 이후 6000년에 달하는 ‘수력 문명’이 실시간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리프킨은 “인류의 오만함으로 수력 문명의 붕괴를 앞당겼지만 수권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고 인류가 수권의 미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미미하다”며 “인류 특유의 적응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집권형 수력 문명의 관점으로 도시를 짓고 대규모 농업 활동을 하며 슈퍼 댐 등 수력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에는 중앙집권적인 댐 대신 수만 개의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자체 전력 공급 시스템)’가 사용될 것”이라며 “대기업, 중앙 데이터센터, 큰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수력 문명이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시를 떠나 외곽으로 가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며 중소기업, 에지 데이터센터, 수소연료 활용 등이 활성화되면서 ‘세방화(Glocalization)’와 생태 지역 거버넌스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리프킨은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아메리카와 중동의 몇몇 정부는 붕괴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국경 확장 효과가 일어나거나 기후 상황 등에 따라 공동으로 대비하는 사람들이 한 권역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와 미국 북부의 캐스케이드산맥 일대처럼 기존의 국경을 넘어 같은 기후 문제를 공유하는 권역대가 하나의 국가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신유목 시대가 도래하는 한편 특정 기간만 삶을 지속하는 팝업 도시뿐만 아니라 수직형 농장도 신유목 인구와 함께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패권 확보를 위해 군사안보 또한 목적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게 리프킨의 진단이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는 수십만 명이 생태 지역 보건 활동에 나서고 있다”며 “앞으로 군대는 기상과 기후 이변에 대한 구호를 비롯해 생태 지역 거버넌스에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앙집권화가 아니라 에너지 분산화라는 대안적인 방식의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자원 확보와 패권 다툼은 의미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올해 79세가 된 노학자는 인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위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는 만큼 새로운 세계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시카고 남부의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나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평범하게 자라온 내가 이렇게 다양한 책을 낼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꿈을 크게 가질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