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연금 수익 차이, 의사결정 과정 구조에 달렸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경영학 박사)

초보 투자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자기 과신’이다. 어쩌다가 한 투자에서 성공하면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더 큰 리스크를 지닌 상품에 지르곤 한다. 요즘처럼 상당 기간 자산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는 초보 투자자 뿐만 아니라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도 이런 오류를 범한다. 자산 가격이 오른 덕에 올릴 수 있던 성과를 자기 능력이라고 뽐낸다. 진정한 투자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해서는 상승장에서뿐만 아니라 하락장에서도 투자를 해보며 충분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단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올 연말 시행 예정인 퇴직연금 로보 어드바이저 일임(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투자 자문을 해주거나 투자 자금을 운용해 주는 일) 역시 단기간 성과로 ‘자기 과신'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잘 정비해야 한다.


연금 개혁 과정에서 퇴직연금의 낮은 운용 성과가 도마에 올랐다. 수익률 면에서 국민연금과 비교 받으며 투자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다. 퇴직연금의 운용 성과가 저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운용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저조한 성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연금을 운용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투자 기금 운용 과정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상황에 따라 이를 조금씩 조정하며 움직이는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개인 의존도가 높다. 국민연금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합리적인 운용 목표를 세우고 전략·전술적 자산 배분의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최적의 투자 수단을 선택하고 이를 꾸준히 관리 조정한다.


반면 퇴직연금은 기업체 인사 또는 재무 담당자나 근로자 개인이 이러한 의사 결정 과정 없이 막연한 감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는 실정이다. 퇴직연금 금융회사들이 여러 형태로 투자 자문을 하지만 이는 단순 자문에 불과할 뿐 최종 의사결정은 비전문가가 내려야 하는 구조다.


중장기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장기적인 운용 성과에 대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됐다. 1986년 브린슨(Brinson), 후드(Hood),비보워(Beebower)가 발표한 BHB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에서 중장기적인 의사 결정인 자산 배분 전략이 전체 운용 성과의 93.6%를 차지하는 것으로 실증 분석됐다.


퇴직연금의 운용 성과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전문적인 운용 의사 결정 과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면 된다. 이미 상당수 퇴직연금 금융회사들은 고액 자산가나 연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를 위해 전략적 전술적 자산 배분 등 전문적인 운용 의사결정 과정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로보 어드바이저로 국한하지 말고 전면적인 퇴직연금 운용 과정의 개선이 필요하다. 더 이상 ‘아마추어’ 가입자들에게 의사 결정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과 같은 집합적 확정기여 퇴직연금(CDC)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