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구걸했던 작은 아이의 영혼이 너무 불쌍해 따라서 펑펑 울었습니다. 설화에서 따온 이야기지만 제 이야기 같았어요.” (뮤지컬 ‘홍련’을 본 30대 관객 이모씨)
강렬한 현실감으로 지속적인 학대, 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소극장 뮤지컬들이 대학로를 휩쓸고 있다. 관객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준 ‘힐링 뮤지컬’을 넘어 현실에 기반한 치유를 추구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8일 공연계에 따르면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지난 7월부터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홍련’이 2030 관객이 전체 관객의 80%에 달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달 인터파크 예매 사이트 기준으로 ‘베르사유의 장미’에 이어 2위를 기록했고 소극장 뮤지컬에서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2022년 CJ문화재단의 뮤지컬 창작자 지원 사업 ‘스테이지업’에 선정됐을 당시부터 설화 기반이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주제의식에 씻김굿이라는 독특한 연출 기법으로 한국의 락 뮤지컬이 될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뮤지컬 ‘홍련’은 전래 동화인 ‘장화홍련’과 전통 설화 ‘바리데기’에서 착안해 홍련과 바리라는 두 명의 인물을 등장시켰다. 저승의 심판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언뜻 대척점에 선 것처럼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 받았다는 데 있다. 서로가 가해자가 아닌 학대 피해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할 때 관객들도 저마다 자신의 숨은 상처를 마주한다. 인터파크 예매 사이트의 실관람객 후기도 1800건 이상에 평균 관람 평점이 9.9점에 달해 입소문 효과가 큰 작품이다.
소설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작품도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대학로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이금이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재탄생했다. 극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유진은 유년 시절 아동 성폭력이라는 같은 아픔을 겪었다. 중학생이 되어 거울 같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상처와 대면하며 성장한다.
지난해 출간된 후 많은 사랑을 받은 김지윤 작가의 장편 소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도 뮤지컬을 통해 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한 색채를 갖게 됐다. 길거리 공연 가수, 만년 작가 지망생, 경력 단절 여성, 독거 노인 등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연남동의 한 빨래방에서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적는 방명록을 통해 서로 교감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우리 주변에 생활 공간의 하나로 자리 잡은 빨래방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현실감을 대폭 높였다는 설명이다.
내달 공연을 앞둔 뮤지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역시 황보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인생의 풍파를 계기로 돌연 휴남동에 동네 서점을 낸 주인공 영주가 엄마가 된 고등학생 등 단골 손님들과 부딪히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공연업계 관계자는 “청년들 사이에 정신 질환을 소셜미디어에 인증하거나 지속적인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다 보니 ‘힐링’을 주제로 한 뮤지컬들도 막연한 이야기를 다뤄서는 반응을 얻기가 어렵다”며 “사실적이더라도 현실감 있는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줄 수 있는 뮤지컬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