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뉴욕 증시의 대표 지수를 관리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다우존스 지수위원회가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30대 구성 종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GE가 1907년 11월 다우지수에 편입됐으니 111년 만의 퇴장이었다. GE는 사업 재편 실패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추락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1주당 300달러대였던 주가가 2018년에는 30달러 선으로 급락했다. GE의 빈자리는 세계 1위 제약 유통 체인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가 채웠다.
2년 후인 2020년 8월에는 GE와 함께 다우지수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글로벌 석유 회사 엑손모빌이 다우지수에서 퇴출됐다. 엑손모빌은 2000년대 전 세계 에너지 업체 가운데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군림했다. 2014년 7월에는 1주당 주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다우지수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엑손모빌 대신 고객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가 새로 편입됐다. GE·엑손모빌의 잇단 퇴장은 뉴욕 증시의 지각변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월가에서는 제조업 중심이던 미국의 산업구조에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최근 ‘반도체 제국’으로 불렸던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GE·엑손모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인텔 주가가 올 들어 60%나 떨어지며 다우지수 편입 종목 중 가장 부진하다는 점 등을 들어 다우지수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텔의 대타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텍사스인스트루먼츠(TI)가 거론되고 있다. 인텔은 현실에 안주하다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뒤처지고 AI 시대로의 전환에 대처하지 못해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올해 2분기에만 16억 1100만 달러(약 2조 16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배당 중단, 전체 직원의 약 15% 감원 계획도 발표했다.
영국에서도 과거의 성공이 기업의 ‘생존 보증수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나왔다. 4일 영국의 명품 패션 업체인 버버리그룹이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급락으로 런던 증시의 대표 지수인 FTSE100에서 제외된 것이다. 버버리가 이 지수에서 탈락한 것은 15년 만이다. FT100지수에는 런던 증시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기준 100대 대형주가 포함된다. 버버리 주가는 지난 1년간 70% 이상 떨어져 FTSE100 기업 가운데 가장 부진했다. 버버리는 특유의 체크무늬 패턴이 새겨진 트렌치코트 열풍을 일으키며 글로벌 명품 의류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트렌치코트의 대명사’라는 명성에 취해 패션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무분별한 확장 전략을 고집하는 바람에 매출이 급감했다.
10년 전인 2014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당시 삼성전자 정보통신·모바일(IM) 부문장이었던 신종균 사장이 중국 업체를 경계하면서 위기 의식과 조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신 사장은 세계 최대 통신 업체로 급부상한 중국의 화웨이에 대해 “네트워크 사업도 하고 스마트폰도 열심히 한다”며 “예전에는 ‘졸면 죽는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굼뜨면 죽는다’고 한다”며 한국 기업들의 경각심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말은 1등이 됐다고 자만하면 금방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신 사장의 말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업체는 하루아침에 도태됐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우리 주력 산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AI 시대를 맞아 삼성전자 등 K반도체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자동차 업종도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로 우리 경제의 전체적인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 모두 지금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빠지면 생존하기 힘들다. 현실에 안주하다가 추락한 글로벌 기업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