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가 신세계(004170)L&B로부터 제주소주를 인수해 소주 사업에 진출한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000080)와 롯데칠성(005300)음료의 양강 구도인 국내 소주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오비맥주는 국내 소주 시장을 넘어서 제주소주의 해외 수출 노하우를 기반으로 K소주의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1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신세계그룹 계열 주류 전문기업인 신세계L&B가 운영하는 제주소주를 인수한다. 오비맥주는 제주소주 생산 용지와 설비, 지하수 이용권 등을 양도받는다. 오비맥주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의 자회사다.
최근 들어 오비맥주는 소주 시장 진출을 위해 잠재적인 매물을 탐색해 왔다. 엔데믹 이후로 시작된 '헬시트레저(건강을 즐겁게 관리하는 트렌드)' 열풍에 ‘음주족’들이 줄며 맥주 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켓링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조2462억원이었던 맥주 시장은 지난해 3조9297억원으로 7.5%가 감소했다.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도 47.2%에서 지난해 46.75%까지 줄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경우 일찌감치 헬시트레저 열풍에 맞춰 제로 슈가나 저도수 소주를 출시하며 맥주시장의 실적 감소 방어에 나섰다. 또 과일 소주 등을 수출하며 사업 다각화에도 힘을 실었다. 그러나 오비맥주는 맥주 카테고리에 국한된 사업 모델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오비맥주는 제주소주를 통해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K소주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10년 만에 1억달러(약 1340억원)를 넘어섰다. 제주소주가 소주 위탁생산(ODM)을 통해 수출을 지속해온 만큼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구자범 오비맥주 수석부사장은 “이번 인수는 오비맥주의 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며 “카스의 수출 네트워크 확장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비맥주가 제주소주를 인수하면서 국내 소주 시장의 양강 체제가 무너질지 주목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지난해 기준 소주 시장 점유율은 하이트진로 59.8%, 롯데칠성음료 18%다. 이어 무학(좋은데이) 8%, 금복주(맛있는참) 4.1%, 대선주조(대선) 3.3%가 뒤를 잇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0년 이후 참이슬, 처음처럼 등 '전국구 소주'가 지방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지역 소주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당장 오비맥주가 제주소주를 인수했다고 해서 소주 시장 판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마트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제주소주에 570억 원을 투입했지만 흑자 전환에 실패한 바 있다. 제주소주 매출액 역시 2017년 12억 원에서 2020년 50억 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업을 철수하기 전까지 4년간 누적 영업손실은 434억 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가 소주 시장까지 진출을 결심한 것은 결국 ‘소맥(소주+맥주)’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면서도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플랫폼을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소주는 2011년 제주도 향토기업으로 출발해 2014년 ‘올레 소주’를 출시해 판매하다가 2016년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190억 원에 매각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이 제주소주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2017년 올레 소주를 '푸른밤'으로 리뉴얼해 출시했지만 하이트진로 '참이슬',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등이 이미 국내 소주 시장을 장악한 상태여서 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21년 3월 이마트 자회사인 신세계L&B에 제주소주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