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객사 러브콜' 신개념 D램 샘플 12월에 낸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삼성전자의 LPDDR D램 패키지. 사진제공=삼성전자

오늘의 주인공 삼성전자의 VCS D램. 사진제공=삼성전자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삼성전자가 일명 'VCS D램' 시제품을 올 12월에 생산합니다. VCS D램. 이게 뭘 할때 쓰는 D램일까. '모바일용 HBM'이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일까? 오늘은 VCS D램의 콘셉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1일 강운병 삼성전자 마스터는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첨단패키지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한 MOU 체결식' 행사 발표에서 VCS D램 회사의 콘셉트를 설명했습니다.



강운병 마스터가 11일 제시한 이 슬라이드를 열심히 뜯어보겠습니다. 키워드는 Cu POST, 첫 샘플(FS : '24.12), VWB 대비 생산성 9배 증가.

일단 발표에서 나온 팩트부터 쭉 말씀드리고 세부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올해 12월에 VCS D램의 첫 샘플(FS·First Sample)이 나옵니다. 구체적인 샘플 출시 기간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강 마스터는 VCS D램에 대해 "애플 등 스마트폰 업체의 요구사항을 받아서 준비하고 있는 기술"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세계 스마트폰 업계의 독보적인 1위 애플이 관심있는 새로운 구조의 D램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이 D램은 '구리 기둥(Cu Post)'이 핵심입니다. 구리 기둥의 종횡비는 6대1입니다. VCS D램의 정보 이동 통로수(I/O)는 일반적인 모바일 D램 패키지보다 8배가 높습니다. 대역폭(Bandwidth)은 2.6배 높다고 합니다. 생산성도 좋습니다. 삼성의 VCS D램은 버티컬 와이어본딩(VWB)보다 생산성이 9배나 높다고 합니다. VWB는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VCS D램이란게 뭘까. 한마디로 '구리를 꼿꼿하게 세운 D램 패키지(꾸러미)'입니다. 스마트폰 안에는 두뇌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있습니다. AP의 연산을 돕는 D램은 AP 바로 위에 패키징해서 위치시킵니다. 여러개의 D램을 겹겹이 쌓아서 만들죠.



기존의 FBGA 기반 와이어 본딩과 VCS D램(오른쪽)의 변화. 구리 기둥(Cu Post)의 재빠른 정보전달을 위한 꼿꼿한 결기가 느껴지시나요.

문제는 D램의 배선입니다. 지금까지는 D램과 AP를 연결하기 위해 위 그림처럼 각 D램마다 구리 선(wire)들을 연결했습니다. 이른바 와이어 본딩이죠.


이 배선들은 '온디바이스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더욱 고용량·더욱 신속한 데이터 처리를 하려다보니 한계에 부딪친 건데요. 우선 기존 방법으로 하면 여러 개의 선을 위치시킬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또 D램 용량이 커지면서 적층수도 증가하는데, 그러다보면 구리 배선마다의 길이도 늘어나면서 정보 이동이 느려질 겁니다. 중간중간 정보가 새어나가는 '크로스톡' 현상도 무시할 수 없죠.


그래서 VCS가 대안으로 등장합니다. 각 D램에 무더운 여름처럼 축축 늘어지는 구리 배선이 아닌 호리호리한 구리 기둥을 꼿꼿하고 촘촘하게 배치하는 겁니다. 공간을 덜 차지하는 데다, 각 배선의 길이가 훨씬 짧아질 수 있는거죠.


이제 강 마스터가 발표한 수치를 다시 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첫째, 정보 통로 수(I/O)가 8배 차이납니다. 기존 와이어 본딩으로 했을 때는 구리 선이 64개였지만 VCS는 기둥 수가 무려 512개입니다. 8배죠.


구리 기둥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데이터 이동 속도는 2.6배 개선됩니다. 오, 잠깐. 근데 대역폭은 왜 기둥 수가 증가하는 것에 비례해서 개선되진 않을까. 구리 배선의 종횡비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발표자료를 보시면 올해 삼성이 확보한 구리 기둥의 종횡비는 6대1입니다. 예컨대 구리 기둥의 지름이 10㎝라면, 일정한 지름을 유지한 채 60㎝ 높이로 기둥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는 거죠 (자료에서 밝힌 구리기둥의 지름은 60㎛ 이하입니다. 그러니까 기둥의 길이는 360㎛ 이하).


하지만 와이어, 그러니까 기존 구리 배선의 종횡비는 2.2대1 정도입니다. 한 I/O에서 데이터가 이동하는 공간은 기존 와이어가 훨씬 널찍널찍하다는 겁니다. VCS는 구리 기둥 하나하나의 정보 전달 속도가 약간 느려도, 기둥 양을 압도적으로 늘려서 대역폭을 키우는 게 기존보다 훨씬 낫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강 마스터는 발표 슬라이드의 제목에 '넓은(Wide) I/O'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생산성에서는 SK하이닉스와의 대결 구도가 확 느껴지기도 합니다. SK하이닉스는 VCS D램을 'VFO'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인데요. VFO는 위에서 말씀드렸던 버티컬 와이어 본딩(VWB)이라는 기술을 양산에 적용할 것 같습니다. 말그대로 이미 만들어진 구리선을 꼿꼿하게 배열해서 수직 기둥을 만드는 거죠.



SK하이닉스의 VFO. ‘버티컬 와이어(Vertical Wire)’라는 표현을 씁니다.

SK하이닉스는 구리 와이어를 꼿꼿하게 세워서 각종 패키징 작업을 거친 다음, 재배선 작업 등을 통해 VFO를 완성합니다. 삼성은 와이어라는 용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도금을 활용해 ;구리 기둥;을 만든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느껴집니다. 자료출처=SK하이닉스 ECTC 2024 자료.

삼성전자의 방식은 조금 달라 보입니다. 강 마스터는 이번 발표에서 회사가 만든 구리기둥의 생산성이 SK하이닉스가 수차례 언급한 버티컬 와이어 방식보다 9배나 좋다고 합니다. 강 마스터의 발표 이후 그를 찾아가 VCS의 구리 기둥을 왜 VWB와 생산성을 비교했느냐고 여쭸더니 "우리는 '도금'으로 기둥을 만들어서다"라고 짧게 힌트를 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의 추측인데, FC-BGA 기판에서 배선을 만들 때의 그 무전해도금 기술로 구리 기둥을 만드는 건 아닐지 상상해봅니다. 아래 그림처럼요.



자료출처: 아지노모토,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DB

또한 아래 그림처럼 4단으로 쌓은 D램을 2단씩 쌓아서 결합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총 두번에 걸친 VCS 패키징 공정이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추측해봅니다. 향후 VCS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대결 구도를 지켜볼만 합니다.



구리 기둥을 두번에 걸쳐 제조했음을 나타내는 붉은 실선. 자료출처=강운병 마스터 슬라이드

VCS=모바일용 HBM? 혼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D램을 '모바일 HBM'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이 말은 틀렸습니다.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VCS는 HBM과 비교하면 구조부터 다릅니다. HBM은 D램 중간에 1000개 이상의 구멍을 내어서 배선을 만드는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을 쓰죠. VCS는 D램 바깥에 따로 배선을 만듭니다. 모바일 D램으로 쓰이는 LPDDR D램이 TSV 공정을 하기에는 두께나 내구성에서 취약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HBM과는 종류 자체가 다릅니다.



VCS D램은 TSV를 활용하는 HBM과 콘셉트 자체가 매우 다릅니다. 사진제공=AMD,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DB

물론 HBM은 D램 씬(Scene)을 뒤흔든 워낙 뜨거운 제품이니까, VCS의 신박함을 HBM에 빗댈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VCS 자체를 '모바일 HBM'로 부른다면 여러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VCS와 HBM은 제품 성격 자체가 다르거니와, 아직 메모리 업계에서는 AI 서버 등에 활용되는 초고용량 D램인 HBM이 모바일 기기에 적용될 확률이 낮다고 보는 게 중론입니다. 당장 HBM을 스마트폰에 적용하면 원가가 너무 올라서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말거란 예측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VCS D램을 굳이 HBM에 빗대야 한다면, '모바일 HBM'보다는 '스마트폰 업계의 HBM', '모바일 HBM 격', 혹는 '제 2의 HBM' 정도로 불리는 게 훨씬 정확할 것입니다.


오늘은 VCS D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구리 배선의 변신이 스마트폰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이 씬에서의 승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누구일지 흥미롭게 지켜봐야겠습니다. 곧 있으면 추석 연휴입니다. 독자님들 파이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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