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방문한 전라남도 GS칼텍스 여수공장. 최대 80만 배럴(Bbl·1Bbl은 약 3.8ℓ)을 저장할 수 있는 원유 탱크 수십 기가 우뚝 솟은 모습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도 같았다. 이곳 공장 부지의 규모는 600만 ㎡(약 180만 평)로 여의도 면적 2배에 달할 만큼 넓지만 바깥에서 일하는 작업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공정 대부분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 자동화한 영향이다.
GS칼텍스 여수공장은 196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 시설이다. 규모는 단일 공장 기준 세계 4위로 80만 개 이상의 장치·계기·배관 설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회사는 이곳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최근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인공지능(AI)·데이터·드론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전환(DX)이 그 어느 사업장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GS칼텍스는 2019년부터 DX에 착수했고 지금까지 업무 100건 이상을 자동화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3158억 원의 비용과 15만 8000명의 인력을 투입해 여수공장 대정비작업(TA)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설비를 효율적으로 유지·보수하기 위해 AI 기반 설비 관리 통합 플랫폼을 도입했다.
김성민 생산본부장은 “2030년까지 여수공장의 DX 과정을 통해 총 1000억 원의 비용 절감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며 “딥 트랜스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수익을 극대화해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원유를 끓여 제품을 만드는 가열로도 DX를 적용하면서 확 바뀌었다. 공장 내 84개의 가열로 내부에는 총 1665개의 연소 설비가 있는데 기존에는 약 600명의 생산 운전원이 육안에 의존해 설비를 관리해왔다. 추연훈 환경기술팀 책임은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을 활용하면 매년 23억 원을 아낄 수 있고 현장의 불편함과 에너지 절감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원유 정제 시 나오는 고체 부산물인 ‘코크’ 관리에는 AI 머신러닝 기술이 활용됐다. 코크가 많이 발생하면 설비에 손상을 줄 수 있는데 데이터 기반으로 코크 발생을 예측해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여수공장에서 GS칼텍스가 DX를 통해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은 안전이었다. 공장에는 총 855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는데 기자가 직접 방문한 방호상황실에서는 164대의 AI CCTV 카메라를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AI CCTV는 사전에 학습 시킨 작업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업자의 이상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위험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작업자에게 경고한다. 직원이 시범적으로 공장에 침입하는 상황을 연출하자 CCTV가 이를 곧바로 인식했고 상황실 내부에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침입 감지’라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김종인 비상대응팀장은 “침입자가 걷거나 뛰는 모습 외에 엎드려서 포복하는 등 특이 자세여도 인식이 가능하다”며 “측정률은 99%”라고 말했다.
AI·CCTV와 함께 공장 내의 DX를 주도하고 있는 또 다른 제품은 드론이었다. 공장이 워낙 넓은 탓에 생산 부서에서는 시설 관리나 작업 현장 확인을 위한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을 느꼈다. 접근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밀폐 공간 등에는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 큰 안전 리스크를 감수했다.
이날도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던 드론을 활용하니 문제가 해결됐다. 이동성이 좋은 ‘외부 검사’ 드론은 넓은 범위를 포괄적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이 드론은 1회 충전에 40분 동안 총 2㎞ 구간을 비행하는 것이 가능해 외부 현장 점검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쉽게 찾아볼 수 없던 ‘내부 검사’ 드론은 실내나 밀폐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기존 드론의 문제였던 충돌·추락을 라이다(LiDAR) 기술과 비전센서를 통해 해결했다.
GS칼텍스 여수공장에서는 100여 건 이상의 DX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올해는 추가로 데이터 분석 모델 20건을 발굴 및 수행 중이다.
강재민 디지털혁신팀장은 “DX는 현장의 페인포인트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며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학습해 업무 개선을 이루고 AI 기술을 활용해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