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출 옥죄기로 부동산 시장 둔화 조짐이 일자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공사비 증액 협상이 강 대 강 대치로 흘러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비사업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에도 잠실 진주아파트 등 사업성이 좋은 현장이 협상을 마치고 공사를 정상 궤도에 올린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부동산담보대출 조이기에 나서며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기미를 보이자 사업성이 낮아진 강북과 수도권 외곽 지역 재건축 단지의 공사비 갈등이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3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증액을 놓고 극심한 갈등이 벌어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경기 광주시의 탄벌동 서희스타일스는 시공사인 서희건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유치권을 행사하고 나서면서 분양자들이 입주를 못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희건설은 아파트 출입구를 닫은 채 경비 용역을 동원해 입주를 막아세웠다. 서희건설 측은 295억 원가량의 공사비 증액에 대해 조합이 인정하지 않고 있어 유치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안4구역 재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롯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인천 미추홀구 주안4구역(주안캐슬앤더샵에듀포레) 재개발 조합이 보유한 사업 부지 일부를 가압류했다. 공사비 증액분 등 공사비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미추1구역에서도 라인건설이 조합에 3.3㎡당 450만 원에서 650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절하자 공사를 중단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공사비 증액 협상도 원만하게 이뤄진다”며 “지금 무섭게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는 강남은 공사비 증액 협상이 거의 다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잠실 진주아파트, 청담 삼익아파트 등은 공사비 증액 협상을 마무리했다. 반포124주구(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도 최근 3.3㎡당 약 793만 원으로 공사비 증액을 합의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했던 올해 상반기에는 구로구 고척4구역, 은평구 대조1구역, 성동구 행당7구역 등 강북에서도 지지부진하던 공사비 증액에 합의한 바 있다.
정부의 부동산담보대출 옥죄기로 시장이 둔화된다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등에 비해 사업성이 약한 강북 지역 정비사업 현장의 공사비 증액 문제가 잇따를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성도 증가함에 따라 조합들이 공사비 증액에 찬성해왔다”며 “만약 다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된다면 사업성이 낮은 단지의 경우 공사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이미 악화된 지방에서는 시공사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2018년 12월 시공사로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선정했지만 최근 시공사 교체를 단행했다. 광주광역시 신가동 재개발 조합도 기존 시공사인 DL이앤씨·롯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한양 컨소시엄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사비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시멘트 등 건설자재의 가격 인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0.10으로 3년 전인 2021년보다 18포인트 가까이 높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와 관련, “이달 중으로 자잿값을 낮추기 위한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정부가 강제로 기업의 팔을 비틀어 낮추라고는 하지 못한다. 가능하면 수급상 애로 요인을 해결해서 자재값 인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