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연휴 평상시처럼 응급실을 찾아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퇴원 후 나오는 진료비 청구서에 찍힌 금액이 높아졌음을 발견할 것이다. 중증·응급상황이라는 판정이 나오지 않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본인부담률이 13일부터 종전의 50~60%에서 90%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속에 대형병원 응급실이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하고 부담을 덜도록 경증·비응급 환자들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불편을 겪고 있는 중증환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체감하는 의료비 부담이 큰 취약계층 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국민의 70% 이상이 실손보험에 가입해 있어서 본인부담률이 올라도 실질적 영향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손보험 개혁과 비급여 관리 강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15일 보건복지부 설명을 종합하면 경증·비응급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등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률을 90%로 높인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이 시행 중이다.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중증응급환자가 적시에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응급실 과밀화를 방지하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경증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하게 되면 본인부담금은 종전 평균 13만원 선에서 22만 원으로 9만원 더 내야 한다. 지역응급의료센터에 방문한다면 이전에는 6만원이던 것이 평균 10만원가량으로 올라간다. 비용 부담이 4만원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다만 질환에 따라, 중증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일단 아프면 바로 응급실을 찾지 말고 동네 병의원이나 작은 응급실을 찾거나 119에 전화해 상담을 받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무조건 경증환자 부담금을 올리면 의료비가 부담되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아파도 참다가 위급해지는 사람이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손보험 등에 가입한 경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소득을 갖고 있을 경우 몇 만원 더 들어도 큰 부담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야간·휴일에 큰 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의료비를 대폭 인상하는 것은 응급실 대란의 책임을 환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라며 “돈 있는 사람들만 응급실에 가라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범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비용으로 장벽을 만들겠다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으나 이에 대한 부담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다”며 “일반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긴 하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취약계층만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손보험 처리만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돈 있는 사람이나 실손보험 가입자는 그냥 돈을 더 내고 가면 된다”며 “그런 구조가 아니라 응급하지 않으면 못 오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정부가 실손보험을 개혁하지 않는 한 경증환자 본인부담률을 상향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부는 환자가 합리적 의료 이용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실손보험 개혁 및 비급여 관리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환자가 스스로 본인의 상태가 중증인지 경증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인부담률만 높인 게 적절한 조치를 받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경증·비응급 환자들은 지역응급의료기관·지역응급의료시설 등으로 먼저 이송해서 치료받도록 권유하며, 적절한 평가와 이송이 이뤄진다면 진료비 상승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으로 생각해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방문했는데 경증으로 밝혀질 경우 병원의 판단에 따른다”며 “환자분이 처음 방문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진료를 받는다고 한다면 본인부담금 상승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