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기다릴 수가 없어요. 다른 식당으로 가려고요.”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인근 도로는 휴일을 맞이해 나들이를 나온 차량들로 가득했다. 식당과 카페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대기 시간이 1시간으로 예상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날 식당을 방문했다 대기를 포기한 60대 주부 유 모 씨는 “추석 당일 아침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은 몰랐다”라며 “추석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가 인근에 있는 롯데프리미엄아웃렛 타임빌라스 앞 도로에도 건물로 진입하려는 차량으로 꽉 막혀있었다. 주차장은 주차 장소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었으며, 매장 내부에 들어서자 함께 쇼핑을 나온 가족들이 매대에 진열된 상품을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이날 배우자와 아들과 함께 아웃렛을 방문한 4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연휴 때 고향에 다녀오면 2~3일은 훌쩍 지나는 데다, 교통정체 등으로 체력적 부담까지 겹쳐 올해는 가족과 단란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며 “게다가 요즘 물가도 많이 올라 일가 친족들이 모두 모이면 식비 등 금전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의 풍속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과거 추석 연휴가 일가친족들이 한 곳에 모여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는 등 음식을 직접 해 먹으며 화합을 다지는 기간으로 인식됐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가족끼리 간단히 외식을 한 뒤 아웃렛으로 쇼핑을 가는 등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실제 이달 15일 SK텔레콤이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021명 가운데 42.1%만이 '추석 연휴 기간 고향 또는 가족, 친척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활동을 하겠다고 답하거나 또는 여행을 가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6.4%에 달했다.
추석 연휴에 주로 누구와 시간을 보낼 계획인지를 묻는 말에는 '직계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응답이 55.2%였으며, 직계 가족 및 친척과 보내겠다고 답한 비율은 28.5%에 불과했다.
이처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진 이유로는 인구 구조 변화와 더불어 물가 상승이 꼽히고 있다. 지난 1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소매가격은 지난 13일 기준 한 포기에 8002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5.3% 상승했다. 무 가격 또한 1개에 3681원으로 1년 전 대비 59.1% 올랐다.
특히 잡채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금치와 당근의 가격도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금치는 100g에 3944원, 당근은 1㎏에 7612원으로 1년 전 대비 각각 57.1%, 23.0% 올랐다.
농산물 뿐만 아니라 일부 수산물과 축산물 가격 또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서민 밥상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과나 배 등 과일 가격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호텔이나 마트의 밀키트로 상차림을 대신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르메르디앙&목시 서울 명동이 내놓은 명절 음식 제품 ‘명절 투고’ 세트의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 추석 대비 10~1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마트에서는 밀키트 제품들이 동나기도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직접 상차림을 하기에는 물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뛰어 마트 등에서 밀키트 제품을 찾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