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6년 동안 지역균형발전에 280조 원을 투입했습니다. 성과가 없지는 않지만 ‘인서울’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지방소멸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백약이 무효인 것이죠. 앞으로 지방 살리기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지난해 5월 발족한 ‘스마트치유산업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성과가 없지는 않지만 엄청난 투입 재원에 견줘본다면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며 “정책 실패의 원인은 지방 주도권이 배제된 채 이뤄진 중앙정부의 하향식 자원 배분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없는 지방만의 고유한 자원, 서울보다 경쟁력 있는 자원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의 경쟁력은 산과 숲, 바다, 향토 음식 등 다양한 치유 자원에 있다”고 강조했다. 정통 농식품부 공직자 출신인 그가 치유산업포럼을 발족하고 사단법인의 이사장을 맡은 이유도 치유산업이 미래의 지방을 먹여 살릴 신산업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는 치유산업을 지방소멸에 맞설 구원투수라고 강조했다.
“치유산업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healing)’과 관련된 산업을 뜻합니다. 웰빙(well-being)이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다면 힐링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해소한다는 개념이죠.”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치유산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유럽은 2차대전 이후 전쟁 피해자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해 치유농업이 본격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도시민은 도시를 탈출하려는 욕구가 강해요. 전원주택에 살거나 텃밭을 가꾸는 게 도시인의 로망 아닙니까. 이를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녹색 갈증’이라고 했어요. 녹색 갈증을 풀어주는 게 치유산업입니다.”
김 전 장관은 치유산업에 꽂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식품부에서 오랫동안 공직을 맡다 보니 지방소멸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농촌의 문제가 곧 지방의 문제이기도 하죠. 농업진흥청장 시절 치유농업에 눈을 떴습니다. 이거다 싶었죠. 한데 치유농업 하나만으로 농촌이나 지방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농업과 관광·음식 등 다른 분야의 치유산업과 결합하는 클러스터 형태가 돼야 발전할 수 있어요.”
김 전 장관은 “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공공기관 이전과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투자 같은 하드웨어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만 지금처럼 인구 감소기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인구 감소기에는 발상을 전환해 지방의 강점과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방소멸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 예천군의 경북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일주일에 3~4일은 지방에서 지내죠. 경북은 도청을 비롯한 교육청·지방경찰청 등을 한데 모은 행정타운을 안동·예천 접경 지역에 새로 만들었지만 이곳에는 임대료를 받지 않는 상가가 있습니다.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SOC 시설을 투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저절로 살려고 모이지 않는 것이죠.”
김 전 장관은 포럼 이사장을 맡은 후 국가 공인 ‘치유농업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관련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한 차례 떨어졌으나 다음을 기약한다고 했다. “치유 분야는 너무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한정하기보다 치유 범위를 넓히고 서로 융복합하면 치유 성과도 높아질 것입니다. 치유 효과의 과학적 입증이 필요한데, 의료 분야와의 협력과 융복합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치유산업의 법제화는 제법 오래전에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가장 앞선 산림 치유는 2005년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법적 추진 체계를 갖췄고 농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2021년 각각 ‘치유농업육성법’과 ‘해양치유자원 관리·활용법’을 제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치유관광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치유산업 전반을 총괄하고 융복합하는 부처나 법령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높아지고 다른 부처와 협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유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제대로 육성하면 지방소멸과 농촌소멸에 대응하는 초고령사회에 주목할 새로운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