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백기사 확보에 나서면서 시장은 대항 공개매수가 실제 가능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MBK의 공개매수 규모가 2조 원이 넘을 정도로 크다는 점에서 최 회장이 이를 능가할 ‘쩐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최 회장 측이 장내 매수 등을 통해 지분을 추가 취득하면서 MBK의 경영권 확보를 저지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국내 증권사 등에 자금 조달을 위한 여러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IB 업계에서는 최 회장 측을 방어할 백기사로 국내 대형 증권사가 대항 공개매수 주관사로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자본시장법은 공개매수자와 특별관계로 묶여 있지 않은 개인·법인은 이에 대항하는 공개매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달 19일 영풍 및 장형진 고문 측과 특별관계자 지위를 해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물론 최 회장과 손잡은 제3자의 대항 공개매수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MBK 측을 넘어설 대형 자본이 이번 경영권 다툼에 발을 들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막대한 자금 조달뿐 아니라 당장의 손실 우려가 있어 자칫 배임죄로 엮일 수 있는 까닭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항 공개매수가 무난히 성공하려면 MBK의 제시가(66만 원)는 물론 매수 규모(최소 6.9% 최대 14.5%)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재무적투자자(FI)를 찾아 국내외 사모펀드(PEF)들을 한 바퀴 돌았는데 성과가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가 최 회장 측 백기사로 나서는 것도 가능성이 높은 편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해당 기업의 이사회가 대규모 자금을 대항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것을 쉽게 승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지분 경쟁이 종료되면 주가가 급락할 위험이 높다”면서 “이렇게 되면 단기간 내 수천억 원의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는데 이 같은 결정을 이사회가 쉽게 할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최 회장 일가가 직접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방어에 최대한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측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은 총 15.6%다. 최 회장은 이 중 1.84%를 갖고 있으며 0.18%를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의 추가 주식담보대출 여력은 1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아직 최창근·최창영 명예회장 등 삼촌들의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특수관계인까지 총동원하면 약 3000억~4000억 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MBK·영풍이 지분율 절반을 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최소 6.05%(약 7000억 원)에는 모자란다.
물론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 기간 중 지분을 장내에서 매수하는 것은 시세조종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해 갑론을박도 있다. 지난해 초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두고 지분 매입 경쟁을 펼쳤던 카카오는 당시 하이브 측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장내에서 주식을 대거 매입한 혐의로 김범수 창업주가 구속됐다.
반면 같은 해 12월 펼쳐진 MBK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기간 중 조양래 명예회장은 경영권을 방어할 목적으로 지분을 장내 매입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바 있다. 당시 MBK는 금융감독원에 시세조종 관련 조사를 요청했으나 당국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조사를 종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은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장할 목적으로 주식 매매를 하는지 여부를 시세조종 혐의의 중요한 점으로 본다”면서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시가에 주식 매매를 체결할 경우 이런 혐의가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3.96% 상승한 73만 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영풍정밀(036560) 주가는 3거래일 연속 상한가인 2만 500원으로 공개매수 가격인 2만 원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