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꽉 잡고 구부정” 푸틴 따라다니던 ‘파킨슨병’ 의혹…혹시 나도? [건강 팁]

■조성양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작년 국내 파킨슨 병 환자 13만명 육박
진행 막을 수 없지만 약물로 증상호전
부작용에 치료 미루면 장애 위험 증가
약물치료·운동으로 삶의질 유지 도움

지난 2022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의 회의 자리에서 책상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트위터 캡처

1942년 11월생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기 전까지 끊임 없는 인지력 및 건강 저하 논란에 시달렸다. 사퇴 직전인 7월에는 파킨슨병 전문가인 케빈 캐너드(월터 리드 군의료센터 신경과 의사)가 8개월간 8차례 백악관을 방문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계기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71세로 다음달 72세가 되는 블라마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암 수술설, 초기 파킨슨병 진단설 등 각종 건강이상설에 시달리는 인물 중 하나다. 일부 신경과 전문의들은 푸틴 대통령이 등장한 동영상 중 악수하기 전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오른손이 떨리는 증상을 두고 초기 파킨슨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회의 도중 탁자를 손으로 움켜쥐는 등의 모습도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손이 떨리는 파킨슨병의 전형적인 증상을 감추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얼굴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이 굳어 보이거나 오른쪽 다리를 끌며 보폭이 약간 좁은 형태로 걷는 것도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행동으로 거론되곤 한다.


이처럼 고령 정치인의 건강이상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뇌의 도파민성 신경세포를 비롯해 다양한 신경세포의 소실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파킨슨병이 발병하면 안정된 자세에서 신체의 일부가 떨리는 떨림,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 근육이 굳어지는 경직, 다리를 끌면서 걷게 되는 보행장애, 자세가 구부정해지면서 쉽게 넘어지는 자세 불안정 같은 운동 증상이 환자마다 다른 조합으로 나타난다. 치매·불안·우울·환시·수면장애·빈뇨·변비·피로·자율신경장애 등 눈에 띄지 않는 비운동 증상들도 나타날 수 있다. 변비 같은 비운동 증상들은 운동 증상이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수면 중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으면 파킨슨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비운동 증상과 함께 행동이 느려지거나 종종걸음, 떨림 등 운동 증상이 있다면 서둘러 파킨슨병을 전문으로 하는 신경과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게 현명하다.



정상(왼쪽)과 파킨슨병 환자의 도파민 운반체 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 사진. 파킨슨병 환자의 PET 검사 사진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붉은 색)가 퇴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2004년 3만 9265명에서 2023년 12만 5526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환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50대 이하 중년층에서 파킨슨병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20·30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파킨슨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제초제·살충제 같은 농약 성분 또는 이산화질소 같은 대기오염 물질 등 환경적 인자가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만큼 확실하지는 않다. 유전적 요인 역시 전체 환자의 약 5% 이내인 가족형 파킨슨병의 발생만 설명할 수 있어 제한적이다. 파킨슨병의 진단은 기본적으로 임상 진찰에 기반한다. 신경학적 진찰이 중요한데 최근에는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의 퇴행을 양전자단층촬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검사는 파킨슨병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약물 유발성 파킨슨증, 이차성 파킨슨증, 본태성 떨림 등과 감별진단하는데 유용하다.


파킨슨병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는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다만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약물은 존재한다. 파킨슨병으로 진단되면 뇌에서 부족한 도파민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약물치료를 통해 운동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 뇌에서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부족할 경우 뇌 운동회로를 포함한 연결 기능들의 장애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약의 부작용이 걱정되어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오랜 약물치료로 약물에 대한 효과가 감소되고 후기 운동 합병증이 심하면 뇌심부자극 수술을 시행한다. 뇌심부자극술은 기계를 피하조직에 장착하고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담창구나 시상하핵에 전기자극을 줘서 운동 증상을 개선시키는 치료법이다. 파킨슨병 운동 증상과 운동 합병증을 약 75% 향상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다.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75세 이전에 시행한다. 파킨슨병이 진행될수록 몸의 근육들이 경직되고 움직임이 느려지며 자세가 구부정해진다. 파킨슨병 진단 후 약물치료와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면 환자의 일상생활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가능하면 스트레칭 체조와 유산소 운동을 매일 1~2시간씩 실천하길 권한다.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균형장애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운동은 근육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낮 동안 하는 게 좋다. 햇빛을 적절히 쬐며 운동하면 골다공증 예방과 우울 증상, 수면장애 개선 등에도 도움이 된다.


파킨슨병 환자는 기운이 없고 쉽게 피곤해지므로 평소 철저한 영양관리가 필요하다. 뇌에 좋은 비타민 C, E가 많이 포함된 사과, 딸기 등의 과일과 녹색 채소 등을 많이 먹어야 한다. 견과류나 기름을 제거한 양질의 닭가슴살, 쇠고기 등을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도 좋다. 단백질은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 약효를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고기를 먹을 경우 레보도파 복용시간과 최소 1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섭취하는 것을 권장한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흔히 겪는 증상인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1.5ℓ 정도의 물을 낮 동안 수시로 마시면 변비에 도움이 된다.



조성양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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