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초 세계 최대 내시경 기술 콘퍼런스인 ‘엔도(ENDO) 2024’가 열린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홀. 내시경 수술 로봇을 활용한 ‘종양 제거 수술’ 전 과정이 대형 스크린에서 실시간으로 중계 되고 있었다. 행사장을 찾은 수백 명의 의사들의 긴장된 시선이 스크린에 고정됐다. 긴장감도 잠시, 로봇이 종양 조직을 깔끔하게 절제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행사장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생중계 된 임상 실험의 주인공은 세계 첫 상용 내시경 호환 수술 로봇인 엔도로보틱스의 ‘로보페라’였다. 기존 상용 내시경에 보조 로봇팔을 부착한 비침습(무절제) 수술 로봇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 엔도로보틱스는 올해 6년차 스타트업이다. 소화기 내시경 시장 글로벌 점유율 1위인 올림푸스에서 선정한 ‘톱 13 스타트업’에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선정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미국 스탠포드 의대 등 글로벌 유명 의대 및 병원과 공동 개발을 하고 있고, 글로벌 대형 의료기기 업체는 물론 40개국 의료기기 유통사들과 수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제2의 엔도로보틱스’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혁신·도전적 연구개발(R&D) 과제에 중점 투자한다. 소규모 저성과 과제는 과감히 정비하고 ‘전략기술 테마별 프로젝트(DCP)‘, 딥테크·글로벌 팁스 등 특화형 사업을 적극 확대해 R&D 성과의 질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엔도로보틱스는 DCP 1호 선정 기업이다.
22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4’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중소벤처기업(133개사) 중 중기부 R&D를 수행한 기업은 72.9%인 97개사에 달한다. 또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한 ‘2023년 세계일류상품’(글로벌 시장 점유율 5위 이내) 선정 기업 중 중기부 R&D 수행 비율은 71.4%수준이다.
중기 R&D가 글로벌 톱 티어 기술 개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중기부는 그간 양적 확대 구조에서 탈피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고성과 R&D를 지원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제도 등을 고도화 하기로 했다. 실제 변화된 정책 방향성은 기획재정부와 함께 중기부가 편성한 2025년 예산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우선 저변확대 중심 R&D에서 수월성 중심의 전략분야 육성 R&D 전환을 위해 인공지능(AI), 첨단바이오, 탄소중립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신규과제 예산 50% 이상을 집중 투입한다. 앞서 2023년 중기 R&D 국가전략기술비중은 38%였고 올해는 40%다.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 대응해 ‘나홀로 연구’에서 ‘글로벌 협력 R&D’로 지원을 강화한다. R&D 성과 품질을 높이고 실질적인 글로벌 진출 수단으로 활용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프라운호퍼 등 해외 선도연구기관과 국내 중소벤처기업이 현지 기반 공동 R&D 및 실증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글로벌협력 R&D’를 신설한다.
이밖에 R&D 성공에 대한 기업 주관적 목표달성은 배제하고 시장에서 검증, 선별하는 민간주도 R&D도 강화한다.
김영신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원장은 “내년에는 중소벤처기업 R&D를 뒷받침하기 위해 ‘융자 연계형 R&D’를 2배로 확대하고 R&D 성공기술에 대한 ‘사업화 융자 프로그램’ 등이 신설된다”며 “중소벤처기업의 우수한 기술이 개발에 끝나지 않고 신속하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후속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