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 영화인 ‘그녀(Her)’가 올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영화 재개봉이 아니라 올 5월 공개된 오픈 AI사의 생성형 언어모델인 GPT-4o가 영화 속 ‘그녀’인 사만다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공상과학소설(SF)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도 인간과 거의 유사한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1968년 작이다. 이들 소설과 영화가 나왔을 때만 해도 AI는 창작물에서 존재할 뿐 조만간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라고 한 피카소의 말처럼 상상이 아주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생성형 AI는 이제 단순 연산이나 추론을 넘어 그림·작곡 등 창작의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면서 지난해 18억 달러였던 시장 규모가 2028년에는 138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사물인터넷(IoT)은 물론 농업·축산업 등 1차산업 현장에도 AI 기술이 도입되면서 산업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AI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은 작물의 잎과 줄기, 가축의 눈동자와 피부 등을 관찰하고 동식물의 질병 징후를 감지해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는 데 활용된다.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인공지능 대전환(AX)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 AI는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됐다. 국가와 기업은 물론 이제 개인까지도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생산성이 좌우되는 시대다. 전 세계 각국이 AI 기술 개발을 위해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다. 2023년 기준 주요국 정부와 민간 분야의 AI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미국이 874억 달러, 유럽연합(EU)이 135억 달러, 중국이 113억 달러로 주요 3개국이 전 세계 투자액(1419억 달러)의 약 79%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의 AI 투자 규모는 세계 전체의 2%에 불과한 30억 달러 수준이다. 최근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도 AI 투자 계획을 수립했거나 검토 중인 기업의 비중(43.9%)은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주요국 대비 저조한 투자는 경쟁력 하락과 직결된다. 포브스의 ‘2024년 AI 50대 기업’ 리스트에 우리 기업이 단 하나도 포함되지 못한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9개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 미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들은 그만그만하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위해서도 분명한 미래 먹거리인 AI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시급하다. 2027년까지 AI 및 AI 반도체에 9조 4000억 원을 투자해 우리나라의 AI 기술 경쟁력을 세계 3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반가운 이유다.
최근 한경협은 ‘AI혁신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I AX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구성된 최초의 민간 협의체다. 건전한 AI 생태계 조성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기대한다. 아름다운 상상이 멋진 현실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