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나갈 때마다 필자는 “제일 어려운 직업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데 대부분 “내 직업”이라고 답한다. 맞는 답일 수 있지만 필자가 나름 생각하는 답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일로써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하고 힘들다. 기본적으로 서로의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어느 관공서·회사든 민원 부서 근무를 기피한다. 이런 현상이 최고조에 달하는 곳이 바로 경찰·검찰 같은 수사기관이다. 수사는 조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분야다. 때로는 불일치를 넘어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돼 모두 기피하는 직업이나 직역이 된다.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이제는 사건을 검사에게 던져도 검사는 보완 수사, 재수사 요청 버튼만 누르면 검사 킥스(수사정보시스템)에서는 사라진다고 하고, 사건의 시계는 오로지 수사 경찰의 킥스에서만 돌아가니 미칠 노릇이다.’, ‘수사 부서 탈출은 지능순이므로 유능하고 똑똑한 요즘 후배들이 수사 부서에 전입하지 않고 전입해도 탈출하려 하며 그걸 붙잡을 명분도 없다.’
이 글처럼 수사권 조정 이후 검사는 사람을 안 만나도 되는 구조가 됐다. 대신 일선 수사경찰관들이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돼 수사 부서에서 비수사 부서로 탈출하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경찰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궁극적인 피해는 범죄 피해자와 억울하게 수사를 받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게 문제다. 경찰은 사건 관계인들을 조사하면서 심증을 형성하고, 판사도 피고인과 피해자, 증인 등의 이야기를 듣고 판결한다. 그런데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는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기소나 불기소를 해도 되는 구조가 됐다.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이 있을 때는 검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따라서 검사가 심증 형성이 안 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가로 조사해 송치하라거나 재지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검사가 ‘난 잘 모르겠지만 기소하지 못하겠으니 무언가 추가로 증거를 가져와 나를 설득하라’는 구조다. 물론 검사가 직접 추가 수사를 해 기소나 불기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정의감과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일종의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런 정의감과 선의를 제도적으로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전체적인 사건의 총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2019년 184만 건에서 2023년 125만 건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사건 처리에 소요되는 일수는 늘어나고 있다. 검찰에서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 중 3개월을 넘어 이행된 사건 수가 40%를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1년 이상 지나 방치라고 볼만한 사건도 2%다. 재수사 요구는 더 심각해 50%가량이 사건 처리에 3개월 이상 소요된다.
사건 수가 줄었음에도 처리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인력 충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의 수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자원은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정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