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석유 부국의 국부펀드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석유 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현 경제 구조를 다각화하겠다는 차원에서 유망 AI 기업들에 손길을 뻗는 모습이다.
22일(현지 시간) CNBC 방송이 시장분석업체 피치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년간 중동 국가들의 AI 기업 투자가 5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최근 중동 국부펀드들의 AI 투자 소식은 잇따라 전해지는 분위기다.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UAE의 AI 펀드 MGX는 챗GPT 개발사 오픈AI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MGX는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와 UAE 국영 AI 기업 G42가 창립 파트너로 참여한 AI 전용 펀드다. MGX는 최근 데이터센터 등 투자를 위해 최대 1000억 달러 자금을 조달한다는 목표로 블랙록, 마이크로소프트(MS),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GIP) 등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UAE의 무바달라도 지난 4년간 8건의 AI 거래를 성사시켰다. 무바달라의 투자 대상에는 ‘오픈AI 대항마’로 불리는 앤스로픽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도 미국의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400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 체결 협상을 진행 중이며 AI 전용펀드인 SCAI를 출시했다.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인 투자는 국가 경제 다각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IT(정보기술) 투자를 일종의 헤지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풍부한 자금력도 대대적인 투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기존 벤처캐피털과 달리 산유국들의 국부펀드는 에너지 가격에 힘입어 충분한 자금 동원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의 총 자산은 현재 2조7000억 달러에서 2026년 3조 50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사우디 PIF는 925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무바달라도 3020억 달러에 이른다. 카타르투자청(QIA)과 쿠웨이트 펀드의 규모도 각각 4750억 달러와 8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속내는 다소 복잡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 국부펀드가 중국보다 자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원하지만 대대적인 투자로 기업들의 가치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높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NBC는 “일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현금의 홍수로 마사요시 손(손정의)의 비전 펀드를 언급하며 소프트뱅크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위워크 등에 투자하면서 이들 기업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으나 위워크는 결국 파산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