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멈춰 선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에 이어 이번 주말 고리 3호기가 정지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 탓에 계속운전 허가를 제때 받지 못해 멀쩡한 원전을 세우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내후년까지 고리 4호기와 한빛 1·2호기(2025년 12월·2026년 9월), 월성 2호기(2026년 11월) 등이 또 가동 중단될 예정이어서 국민 부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3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28일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발전용량 950㎿ 규모의 고리 3호기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다. 고리 3호기는 1979년 12월 건설 허가, 1984년 9월 운영 허가(상업운전)를 받아 40년간 전기를 생산했다. 누적 발전량은 2690억 ㎾h로 지난해 부산 지역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배를 웃돈다. 쌍둥이 원전인 고리 4호기도 내년 8월 설계수명이 만료돼 가동이 중단된다.
지난해 4월 멈춘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계속운전 신청 시기를 놓친 원전은 총 6기나 된다. 문재인 정부는 통상 최초 설계수명 만료 3년 6개월~4년 전에 착수해야 하는 계속운전 허가 절차를 방치했다. 결국 고리 3·4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신청은 지난 정부 내내 미뤄지다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9월에야 이뤄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관련 절차를 고려하면 고리 3호기는 1년 6개월 이상 가동 중단 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의 수명 연장은 에너지 안보 위기 속에 글로벌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 확충과 전기차 등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8기 가운데 55%인 239기의 계속운전이 승인됐다. 폐쇄된 원전까지 포함하면 계속운전 시행 비율은 91%에 달한다. 특히 원전 최강대국인 미국은 지난해 말 기준 가동원전 93기 중 84기(90%)는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최초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난 미국의 원전 63기는 모두 계속운전을 했다.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 지난 정부가 미적대는 동안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누적 손실은 4조 9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연도별로는 △2023년 1800억 원 △2024년 8000억 원 △2025년 1조 3200억 원 △2026년 1조 7100억 원 △2027년 9400억 원 등이다. 이는 값싼 원전을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가정하에 원전별 1년 전력 판매량에 가동 중단 일수와 판매가 차이(LNG 판매 단가-원자력 판매 단가)를 곱해 산출했다. 일종의 기회비용인데, 전기요금까지 묶어놓으면서 애먼 한국전력이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없었다면 애꿎은 원전이 1년 이상 장기 가동 중단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원전을 사양산업으로 낙인찍으면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도 앞으로 계속운전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30년까지 한울 1·2호기와 월성 3·4호기 등 총 10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계속운전을 하는 게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는 것보다 주민 수용성이 높고 비용 효율적”이라며 “탈원전을 채택했던 스위스와 벨기에조차 계속운전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김성중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년 단위로 계속운전 허가를 받는 미국·일본과 달리 한국은 10년 단위로 승인을 받아야 해 수명 연장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또 10년 승인을 받아도 안전 심사 등에 소요된 기간을 계속운전 기간에서 제외하지 않아 실질적인 계속운전 가능 기간이 10년 미만”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