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전공의 빈자리 대체? 몰라서 하는 소리” 병원들 속사정은

상급종합병원 8곳, 11월 3주 신규간호사 채용 재개
빅5 병원조차 2곳은 채용 규모·일정 등 확정 못해
“의료공백에 수익난 악화…전공의 업무 대체는 무리”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경증환자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대형병원들의 경영악화로 꽉 막혔던 신규 간호사 채용이 재개됐다. 내년 6월 간호법이 시행되면 진료지원(PA) 간호사가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만큼 전공의와 PA 간호사로 전환된 기존 간호사들의 공백을 채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는데, 일선 병원들은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속앓이만 하고 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신규 간호사 채용 공고를 게재하고 원서 접수를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도 각 간호대학에 채용공고를 발송하고 채용 절차에 돌입했다. 세 곳 모두 내년 2월 졸업 또는 간호사 면허 취득 예정으로 임상현장 근무 경험이 없는 신입 간호사가 대상이다.


서울대병원은 원내에서 필요한 간호사 인력 규모 등을 확인해 150명을 뽑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민간 의료기관인 만큼 세자릿수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규모를 공개하진 않았다.


대한간호협회(간협)에 따르면 고려대의료원 산하의 고대구로·안암병원과 건국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도 올해 신규 간호사 채용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당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은 올해 채용부터 대기순번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최종면접을 같은 기간에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채용 이후 의료기관에 실제로 근무하기까지 기약없이 대기 발령 상태를 유지하는 데 따른 애로사항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장기화 여파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중 강북삼성병원, 중앙대병원을 제외한 다수 병원이 상반기 신규간호사 채용을 보류하면서 적잖은 간호사들이 구직난에 시달렸던 상황이다.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간협이 보건복지부와 함께 올 하반기에 신규간호사 채용이 시행될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한 끝에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8곳이 11월 셋째 주부터 신규간호사 채용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채용은 지난달 PA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내용의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과 무관하다는 게 일선 병원들의 입장이다. 신규간호사 채용을 시작한 병원의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로 진료건수가 줄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비상경영 체제에서 외래진료와 수술을 소화하기 위해 신규간호사 채용에 나선 것”이라며 "아직 간호법 시행 전인 만큼 PA 간호사의 대규모 채용이나 전환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빅5 병원의 관계자도 "간호사들은 워낙 이직과 퇴사가 많다. 채용 후 부서별 수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발령을 내는 구조라 작년에 뽑은 신규간호사 발령도 최근에야 완료됐다"며 "PA나 전공의 공백을 메우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신규간호사 채용에 나선 대형병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부가 전공의 이탈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수련병원들에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의료인력은 줄고 병원 이용 환자는 늘어난 탓에 애로사항이 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는 6조 8669억 6000만 원으로 지난해 8조 3199억 원보다 17.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상급종합병원이 대거 인력 이탈로 의료 공백이 생기자 환자들이 병원이나 의원 등으로 발길을 돌린 결과로 분석된다. 진료건수와 진료비도 일제히 줄었다.


빅5 병원조차 선뜻 신규간호사 채용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성모병원은 신규간호사 채용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규모, 일정 등은 확정하지 못했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신규간호사 채용 여부조차 미지수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신규간호사를 채용해도 혼자서 10명 넘는 환자를 담당할 정도로 숙련도가 높아지려면 몇년이 걸린다. 전공의 업무를 대신할 만한 PA 간호사로 훈련시키는 것 오죽하겠느냐"면서 "PA 등 전공의 대체 인력으로 활용한다는 건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간호대학 입학정원은 2만 3883명이다. 올해 간호사 국시에는 약 2만 5000명이 응시했다. 간호사 응시 합격선이 95%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2만 4000명 가량의 간호사 면허 소지자가 대기 중이라는 얘기다. 작년 합격자 등을 합치면 취업 대기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이 신규간호사 채용인원을 60% 가량 담당해 왔는데, 예기치 않게 채용이 동결되면서 수만 명에 달하는 간호인력들의 취업길이 막혀있는 상황이다. 간협 관계자는 “대형병원들이 올해 신규 간호사 발령과 함께 내년에 발령되는 간호사 채용을 재개해 간호사 취업난 해소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채용 진행 상황 등을 파악하는 한편 보건복지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신규 간호사 채용이 최대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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