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14곳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원전 사고 이후 발전소 건설 등에 필요한 대출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전력난으로 원전 수요가 늘면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3일(현지 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스, BNP파리바, 씨티 등 14곳은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행동 촉구 방안에 대한 지지를 공식 표명했다. 이들 은행은 기후 주간 부수 행사로 미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개최된 ‘넷제로(탄소 중립) 원자력 포럼’에서 존 포데스타 백악관 기후정책보좌관 등 정부 대표와 업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산업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FT에 따르면 참여 은행들은 민간 부문 파트너들에게 원자력 에너지 지원에 대한 구속력 없는 확약서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 금융기관은 공식 논평은 거부했는데 여전히 원자력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것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지지 표명이 향후 산업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신규 원전 건설의 걸림돌 중 하나가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드는 높은 비용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들은 원전 프로젝트의 복잡성 및 리스크뿐 아니라 원전 사고나 정치적 논란 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장기간 원자력에 대한 지원을 꺼려왔다. 실제 세계은행과 여러 다자간 기구 등도 원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떤 금융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조지 보로바스 세계원자력협회 이사는 “지금까지 금융기관이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때로는 최고경영자(CEO)의 승인까지 필요했다”며 “이번 (지원) 약속은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금융기관의 지원이 원전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들 금융기관은 민간 원전 기업에 대한 직접 대출이나 PF 지원 등을 넘어 기업 채권 판매를 주선하거나 관련 펀드 등을 판매하면서 원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AI와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자력은 저탄소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대형 기술기업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의 원자로를 재가동해 20년간 전력을 공급받기도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계약을 맺었다. 원전 지지를 약속한 14개 기관 중 하나인 구겐하임증권의 제임스 셰퍼는 “기술기업들이 (원전 기업과 계약하는 것을 넘어) 원전에 투자하는 순간 모든 일이 시작될 것”이라며 새로운 원전 붐을 이끌 금융이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