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진정서 396건 제출’… 진정권 남용으로 빛 바랜 인권위 진정제도

10년간 제출된 진정서 인용률은 0.4%대 그쳐
‘매월 라면 지급하는 규정’ 등 황당 정보공개 요청도
강명구 의원 “유료 서비스 도입해 부작용 방지해야”


수감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제도가 진정권 남용으로 의미가 퇴색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0년간 교도소 수용자가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는 총 4만4519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인용된 건수는 217건으로 전체 대비 0.48%에 그쳤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1조에 따라 교도소나 구치소 수감자들에게 진정권을 보장하고, 인권침해 주장에 따라 교도관 등 직원을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감자들이 해당 제도를 교도관을 괴롭히고 수감생활을 편하게 하려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한 수용자는 2년 6개월 동안 396건의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 수용자가 제출한 진정서는 한 건도 인용되지 않고 기각됐다.


수용자들이 제기한 행정심판 기각률도 높았다. 행정심판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잘못된 행정 판단을 했을 때 해당 결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4개 지방교정청에서 접수된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5273건이었지만, 인용 건수는 14건으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정보공개 청구 건수도 10년간 36만건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구 내용 중에는 ‘수용자에게 매월 라면을 지급하는 규정’, ‘본인이 법무부 장관에게 표창을 받는 방법’ 등 황당한 요구도 포함됐다. 또한 ‘교도관들의 가족관계와 집주소’, ‘직원들의 신분증 사본’ 등 복수를 암시하는 요청도 있었다.


한 교정기관 관계자는 “수용자들이 실제로 피해를 받아서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기보다는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권위에 진정서가 많이 제출되면 아무래도 교정직원들이 수용자들을 제재하는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진정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법조·정치계 안팎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차츰 힘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정보공개 청구에 복사비를 부과하거나, 진정과 행정심판과 같은 청구사건은 변호사를 통한 대리진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강 의원은 “수용자진정제도가 수용자들의 놀잇감이 돼 누군가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매우 끔찍한 일이다”며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유료서비스를 도입해 부작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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