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무역위원회 기능 강화는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4’에서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미국 대선 후 산업통상정책’을 주제로 이날 두 번째 주제 강연을 한 박 교수는 미국이 보호주의를 지속하는 배경으로 불평등 심화를 꼽았다. 그는 “노동자층은 자유무역 체제에서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을 띨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미국 대선 때 이런 부분을 파고들어 집권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민주당도 다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선호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도는 다르지만 유럽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중 간 패권 전쟁 심화가 양국의 산업정책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미국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중국 수출을 막는 것은 상대방이 관련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게끔 하기 위함”이라며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더라도 공격적인 산업정책을 펴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 대선 이후 득세할 보호무역주의에 한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CPTPP 가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CPTPP는 한국이 가입할 수 있으면서도 현재 제대로 기능하는 거의 유일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라며 “특히 국영기업에 대한 비(非)상업 지원을 철저히 조정하려는 내용이 있어 추후 중국이 CPTPP에 가입할 때 우리가 규칙 제정에서 많은 부분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교역을 확대하려면 선진·개발도상국이 조화롭게 가입된 CPTPP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역위원회 기능도 사전에 보완해야 한다. 박 교수는 “중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산업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어 세계적으로 과잉 생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덤핑 방지 관세가 상계관세를 담당하는 무역위를 강화해야 하며 법적으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한국이 글로벌 보호무역 흐름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이 공급망을 동맹국으로 바꾸면서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던 한국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최근 미국경제학회보(AER)에 실린 논문을 인용하면서 “미중 관세정책에서 타깃이 된 제품의 수출 증가율이 다른 제품보다 높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관세 전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는 한국 글로벌공급망(GVC)의 탈중국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실제 미중 관세 전쟁이 터질 때 한국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