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주주들

박시은 투자증권부 기자

“직원을 내세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과연 주주들을 위한 것인가요?”


이달 24일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과 김승현 기술연구소장을 비롯한 핵심 기술진 20명이 “MBK파트너스가 회사를 인수하면 기술자들 다 그만둘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한 주주의 반응이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영풍·MBK파트너스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신경전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날마다 쏟아지는 상대를 향한 날 선 입장문들은 주주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공동경영 체제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영풍이나 대형 사모펀드의 등장으로 당장 경영권을 빼앗길 판인 최 회장이나 모두 절박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개매수를 통한 한국타이어그룹의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실패한 MBK파트너스 역시 평판 리스크 측면에서 이번 공개매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번 싸움이 자본시장을 넘어 정·재계로까지 번지는 등 나날이 거칠어지는 것은 바로 이 ‘절박함’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흐르면서 양측이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자본시장의 원칙을 잊어버린 듯하다는 점이다. ‘최대주주가 바뀌면 핵심 기술자 모두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겁박에 가까운 선언이 나온 것 역시 이 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최 회장의 우군으로 불리는 내로라하는 그룹사들이 공개적인 지원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것도 개인적 친분보다 각 회사 주주의 권리를 우선시해야 함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업계에서는 어느 인수합병(M&A)보다 이번 일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이번 공개매수 결과가 국내 시장 참여자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고려아연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을 직접 택할 수 있는 기회다.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도, 대항공개매수가 유력해보이는 최 회장의 반격도 그 성공 여부는 결국 주주에게 달려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사사로운 감정싸움은 이제 넣어두고 주주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호소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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