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잡다가 서민 붕괴…아르헨 빈곤율 53%까지 급증  

“2003년 이후 최악” 아동 빈곤율 66% 웃돌아
정치권 책임 공방… 밀레이 대통령 인기도 추락

1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거리에서 어린이들이 무료 배급 식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이 52.9%까지 치솟았다. 국민 둘 중 한 명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셈으로, 21년 만에 최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며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인 긴축정책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인기도 추락하는 양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올 상반기 빈곤율이 52.9%로 지난해 하반기의 41.7%에서 11.2%포인트나 상승했다고 밝혔다. 빈곤율은 소득 수준이 기본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얻기도 어려운 수준인 빈곤선(LP) 아래 인구를 의미한다. 이 수치는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FT는 올해 들어서만 340만 명의 아르헨티나 국민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소한의 먹거리 수요마저 충족할 수 없는 극빈율도 18.1%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보다 6.8%포인트 높아졌다. 14세 미만 아동 빈곤율은 66.1%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밀레이 대통령이 연율 300%를 넘나드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를 잡기 위해 돈 풀기를 중단했고 지난해 12월 전월 대비 25.5%씩 오르던 물가는 올해 8월 전월비 4.2%까지 내려앉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 경제가 붕괴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FT는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 후 최소 13만 6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비공식 부문의 손실은 더욱 클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밀레이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된 생필품 가격통제 제도 폐지와 에너지·교통 보조금 삭감, 50%가 넘는 페소화 평가절하 등이 생활비 부담을 키워 빈곤층을 늘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 정치인들은 “정부의 끊임없는 긴축이 노동자 가정과 노년층에게 타격을 주고 있고 해결은커녕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 정부 측은 전 정권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대통령실 대변인인 마누엘 아도르니는 “우리 정부는 페론주의자들로부터 비참한 상황을 물려받았다”며 “긴축이 없었다면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에 빠져 모든 국민이 가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50% 내외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던 밀레이 대통령의 인기도 급락하고 있다. 토르쿠아토디텔라대가 집계한 정부에 대한 신뢰지수는 이달 14.7% 떨어져 올 들어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CB컨설토라의 크리스티안 부티에 이사 역시 “9월 밀레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8월보다 4.2%포인트 하락한 46.4%로 나타났다”며 “이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느낌이 강해지는 가운데 (정부가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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