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수혜주인 은행주를 정리하면서 2차 전지 종목을 대거 사들였다. 유럽의 보조금 지급 재개, 전기차 수요 회복 등의 전망이 가시화되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 등은 이달들어 LG에너지솔루션(373220)(1829억 원),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660억 원), 삼성SDI(006400)(534억 원), 포스코퓨처엠(003670)(473억 원) 등을 적극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통화 당국이 기준 금리를 인하한 이달 19일 이후 7거래일 간 LG에너지솔루션을 689억 원, 포스코홀딩스를 455억 원, 삼성SDI를 205억 원가량 쓸어담았다.
연기금 등이 해당 종목들에 베팅한 것은 2차 전지 산업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전지 종목이 바닥을 찍었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과 맞물려 유럽의 보조금 지급 재개, 미국의 금리 인하 등에 힘입어 투자 심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달 들어 테슬라의 주가가 20% 넘게 뛰면서 전기차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증권가에서는 2차 전지 관련 종목의 목표가를 잇따라 높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3개월 증권사 평균 목표가 추정치는 46만 4611원에서 최근 한 달 새 49만 1444원, 삼성SDI는 50만 4895원에서 52만 4667원, 포스코홀딩스 50만 4895원에서 52만 4667원으로 올랐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정책 효과로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친환경자동차(xEV) 판매량이 올해 대비 20~30%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유럽 정책 변화의 가시성은 높지만, 미국은 대선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시에도 유럽만으로 국내 2차전지 업체의 내년 실적 개선은 유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밸류업 수혜주로 주목을 받았던 은행주는 정리에 나서고 있다. 밸류업 지수에서 제외된 KB금융(105560)(-758억 원)을 제외하고도, 신한지주(055550)(-623억 원), BNK금융지주(138930)(-131억 원), 메리츠금융지주(138040)(-91억 원) 등을 순매도했다.
밸류업 공시 이후 주가가 급등한 만큼 연기금 등이 차익실현에 나섰고, 밸류업 지수가 공개되면서 은행주를 대거 정리했다. 실제 연기금 등은 지난 24일 밸류업 지수 공개 이후 이날까지 KB금융 307억 원, 신한지주 137억 원, 하나금융지주(086790) 125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다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은행주를 금리 인하 국면의 최대 수혜주로 보고 있다. 은행주와 같은 고배당주는 금리 인하 시기에 채권을 비롯한 저축 상품보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이 증가해 은행 수익성이 개선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주주환원도 활성화될 수 있다.
정광명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밸류업 지수 관련 실망감으로 인해 은행주가 조정을 받았지만 주주환원 확대는 진행 중”이라며 “지난해 대비 늘어난 이익과 총주주환원율 상향 등을 두루 고려한다면 은행 업종에 대한 비중 확대가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