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폭발로 수천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무선통신기(삐삐) 폭발 사고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삐삐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공격의 배후로는 이스라엘이 지목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번 사건은 양측의 대립을 더욱 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7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를 조사한 복수의 레바논 고위 당국자는 삐삐 배터리 내부에 폭발물을 숨기는 매우 정교한 기술이 쓰인 것으로 지목했다. 공격 당시 전원이 꺼져 있어서 폭발하지 않은 기기들을 대상으로 한 폭파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결과다.
레바논 보안 당국의 한 소식통은 “이스라엘이 삐삐의 배터리 안에 폭발물을 숨긴 방식이 너무 정교해서 사전에 탐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폭발물 처리 전문가인 전직 영국 육군 장교 션 무어하우스는 “삐삐 배터리의 금속 케이스 내부에 전자 기폭 장치와 작은 폭약을 심어둔다면 엑스레이(X-ray) 촬영 등으로는 발견하기 불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을 조사한 여러 전문가도 삐삐 내부에 폭발 장치가 숨겨져 있었으며 이는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정교한 공급망 공격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고 있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공격 직후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했고, 레바논 당국도 초기 조사에서 삐삐가 레바논에 수입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폭약을 설치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CNN에 따르면 주유엔 레바논 대사 측은 지난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이러한 초기 조사 결과를 전달했다.
다만 수천개에 이르는 삐삐 내부의 폭발 장치에 대해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설치됐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번 삐삐 폭발 배후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면서 폭탄 공급망 실체에 대한 내부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는 전날 연설에서 "폭발과 관련해 우리는 거의 확실한 어떤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면서 "기기를 판매한 회사부터 제조, 운송, 레바논 반입, 유통까지 폭발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한 조사 및 검토 대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