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사 문제에서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여온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이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다음 달 1일 임시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피해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과 ‘비핵 3원칙’을 깨는 ‘핵 공유’, 자위대 명기를 위한 헌법 개정 등 적극적인 군비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 한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던 한일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국 정상은 12년 만에 ‘셔틀 외교’를 복원하는 등 12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이런 외교적 성과에도 조선인 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이나 사도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등에 대한 기시다 정부의 대응은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새로운 역사 갈등 소재를 만들지 않더라도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과 일본이 계속 과거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양국 모두의 미래에 큰 손실이 될 뿐이다.
지금 동북아 지역에서는 북러 군사 밀착과 북중러 결속 강화 등으로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고 있다. 한미 동맹 격상과 함께 한미일 3국의 경제·안보 공조는 필수 과제이고 한일 관계 개선은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시바 차기 총리가 한일 관계의 해빙 무드를 지속시키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의 자세를 보이고 한발 나아가 적극적인 배상 의지도 표명해야 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우경화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킬 책임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반일 정서를 증폭시키면서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외교안보 현안에서는 초당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내년 수교 60주년을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복원의 계기로 삼고 양국의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하면서 지속 가능한 동북아 평화·번영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