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이 추천한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에 무더기 반대표를 던졌다. 그 결과 해당 안건은 재석 298명 중 찬성 119표, 반대 173표, 기권 6표로 부결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의 절대다수가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반면 야당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 선출안은 찬성 281표로 가결됐다. 여야가 양측 추천 인사 각 1명을 인권위원으로 선출하기로 합의했는데 민주당이 약속을 어긴 것이다. 검사 출신인 한 후보자는 대북 송금 및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사들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대해 올해 6월 언론 기고를 통해 비판했던 법조인이다.
민주당이 한 후보자 선출안을 부결한 것처럼 제 편이 아닌 인사는 낙마시키고 자기 식구만 중용한 것은 대화·타협의 정치와 여야 배분 관례 존중 등의 의회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다. 국가인권위원회·중앙선거관리위원회·헌법재판소 등의 국가기관은 정치 중립과 다양성 차원에서 여야에 추천권을 나눠주고 있다. 그동안 여야 교섭단체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는 여야 합의로 추천해온 관례가 지켜졌다.
헌법재판소도 10월 17일까지 이종석 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3명의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거대 야당의 몽니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국회 추천 몫 3인을 선출할 때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후보 1명은 여야 합의로 결정해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2000년 이후 깨진 적이 없는 관례를 무시한 채 야당 추천 후보 몫으로 2명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추천을 둘러싼 여야 대치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헌재는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등을 위한 최소 정족수 6명조차 채우지 못할 수 있다. 헌재가 불능화되면 민주당이 탄핵소추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업무정지는 무한정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국정 마비를 촉발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고 정부와 사법부를 겨냥한 탄핵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빌드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면서 국가기관 흔들기를 계속 시도한다면 수권 정당이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