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42·SSG 랜더스)가 1만2145번 째 타석을 끝으로 24년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2001년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 위스콘신 팀버래틀러스 소속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추신수는 한국프로야구 SSG 유니폼을 입고 30일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이날 추신수는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의 2024 KBO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팀이 7-1로 크게 앞선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타석으로 들어섰다.
추신수는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고, SSG 팬들은 환호로 반겼다. 아내 하원미 씨와 딸 추소희 양은 눈시울을 붉힌 채 추신수를 바라봤다.
추신수는 김연주(20)의 직구를 공략했으나,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범타로 물러난 추신수를 향해서도 팬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추신수는 다시 한번 헬멧을 벗고 인사했다.
SSG 선수들은 더그아웃 앞에 도열했고, 이숭용 감독은 추신수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추신수는 애써 웃었지만,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이렇게 타자 추신수는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추신수는 ‘가장 먼저 출근하는 선수’로 유명했고, 불혹에도 그 습관을 유지했다. “살면서 야구만큼 좋아한 일이 없었다”는 추신수는 야구에 열정을 쏟았고, 훈련을 통해 기량을 끌어 올렸다.
미국 마이너리그 723경기 3145타석을 거쳐 빅리그 입성 후 16년 동안 1652경기 7157타석에 선 추신수는 2021년 한국 KBO리그로 와 4시즌 동안 439경기 1843타석에 섰다.
추신수는 부산고를 졸업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간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20년까지 빅리그를 누비며 1652경기, 타율 0.275(6087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올렸다.
출장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모두 ‘코리안 빅리거 최다 기록’이다. 20홈런-20도루 달성(2009년), 사이클링 히트(2015년) 등 MLB 아시아 최초 기록도 세웠다.
MLB에서 추신수는 ‘은퇴 경기’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은퇴식과 다름없는 경기를 펼쳤다.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2020년 9월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경기에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1회말 3루수 쪽으로 굴러가는 번트 안타를 쳤다.
1-2루 사이에 야수를 집중하는 휴스턴 수비 시프트의 허를 찌르고, 1루로 전력 질주한 추신수는 베이스를 밟은 뒤 왼쪽 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곧이어 대주자 윌리 칼훈에게 1루를 양보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당시 MLB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무관중’ 경기를 치렀지만, 텍사스 구단은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와 자녀 3명을 초청했다. 가족들은 그렇게 추신수의 빅리그 마지막 타석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MLB 구단의 영입 제의를 받았던 추신수가 2021년 한국프로야구 SSG행을 택하면서 ‘투혼의 기습번트’가 추신수의 빅리그 마지막 타격 기록으로 남았다.
추신수는 KBO리그에서는 4시즌만 뛰어 돋보이는 누적 기록(타율 0.263, 396안타, 54홈런, 205타점, 51도루)은 작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타자 부문 최고령 기록을 모두 바꿔놨다. 한국에 오자마자 2021년에 21홈런-25도루를 기록해 최고령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웠다. 20홈런-20도루 달성 당시 추신수는 39세 2개월 22일로, 양준혁이 200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작성한 38세 4개월 9일을 1년 가까이 넘어섰다.
은퇴를 예고하고 돌입한 2024시즌에는 펠릭스 호세(전 롯데 자이언츠)가 보유했던 KBO리그 최고령 타자 출장, 안타, 홈런, 타점 기록을 모조리 바꿔놨다. 추신수는 KBO 타자 최고령 출장(42세 2개월 17일), 안타(2024년·42세 1개월 26일), 홈런(2024년·42세 22일) 기록의 새 주인이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추신수는 ‘리더’ 역할을 했다. 추신수는 적극적인 기부로 KBO리그 문화를 바꾸고, 구장 환경에 관한 쓴소리로 잠실야구장 라커룸 개선을 끌어냈다. 빅리거에서 뛸 때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고액을 쾌척했던 추신수는 한국에서 뛰는 4년 동안 3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추신수는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내가 야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당연히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야구 후배들이 1순위이긴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곳의 ‘분야’를 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야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팬들의 사랑도 받았다. 아내 등 가족도 기부에 적극적이다. 우리 가족이 받은 걸, 많은 분께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추신수는 4년 동안 야구장 안팎 곳곳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추신수는 “한국말로 자유롭게 대화하며 정말 즐거웠다. 특히 2022년 통합우승을 차지한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뛴 4년 동안 정말 행복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9월의 마지막 날 추신수는 은퇴 경기를 치렀지만, 은퇴식은 열지 않았다. 추신수는 SSG 구단에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다.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돕고 싶다”고 은퇴식 연기를 요청했다. 이에 SSG 구단은 이듬해 추신수의 은퇴식을 열겠다고 밝혔다.
추신수의 바람대로 SSG 후배들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키움을 7-2로 꺾고, 5위 결정전을 성사시켰다. 추신수는 SSG가 5위 결정전에서 승리하면 선수단과 동행해 후배들을 응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