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올해 ‘국군의날’(10월 1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1990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한 지 34년 만이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 총리는 “정부는 올해 국군의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우리 국군의 역할과 장병들의 노고를 상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안건을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재가 이후 공지를 통해 “정부는 엄중한 안보상황 속에서 국방의 중요성과 국군의 존재 가치를 조명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국민의 안보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며 “임시 공휴일 지정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로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재가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하나를 덧붙였는데,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10월 1일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본다면 국군의 날이 왜 10월 1일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보편적 가설은 6·25전쟁 당시 국군이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하고 북한을 향해 진격한 날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사실 국군의 날 제정 제안서와 심의 경과표 등에는 38도선 돌파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여러 예측이 나오지만 최후 전투까지 각오했던 국군이 38도선 돌파를 계기로 북진과 전쟁 승리의 희망을 품게 되면서 군 당국은 10월 1일을 기념하려고 했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달 28일 서울 수복을 통해 전황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절망 속에서 일궈낸 기적은 국민 마음속에 승리의 불씨를 지폈고 38도선 돌파는 이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한 만큼 10월 1일을 국군의 상징하는 기념일로 정했다는 게 대체적인 추정이다.
38도선 돌파 부대의 연대장이었던 고(故) 김종순 소장(당시 중령)은 생전에 “내가 38선을 막 넘었을 때 오두막 독립가옥이 하나 있었는데 백발 노파가 구겨진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들며 눈물을 흘려 정말 감격스러워 나도 울었다”며 “이때는 이 저주스러운 민족 분단선이 영영 무너지고 꼭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일각에선 다른 시각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제정 취지를 살펴보면 국군의 날은 특정한 사건을 기념하기 보다 육·해·공군, 해병대의 단결과 국군의 사기 북돋을 날짜를 선택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1956년 9월 14일 국무회의에 제출된 국군의 날 제정 제안서와 심의경과표 등에 실제 유사한 내용이 명시돼 있다. 문서에는 국군의 날 제안 이유와 배경에 대해 ‘3군 통합 정신과 국군의 사기, 그리고 국민의 국방사상을 함양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재정·시간을 절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군의 날 제정 전에는 육·해·공군, 해병대가 창설일을 자체적으로 기념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정부는 당시 국무회의를 통해 기존 군별 기념일을 10월 1일로 통합해 국군의 날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실제 마지막으로 출범한 공군 창립일에 경우 10월 1일로 우리 군이 육·해·공군, 해병대로 이뤄진 국군 체제를 완성한 이날에 맞춰 국군의 날로 의결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종합하면 국군의 날은 육·해·공군, 해병대의 국군 체제를 완성한 날로,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하고 국군의 헌신과 노고를 격려·위로하기 위한 날인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군의 날 제정 취지는 전 세계 각국과 비교하면 유사하다. 예컨대 미국은 각 군이 통합된 기념일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5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군의 날(Armed Forces Day)로 정했다. 영국은 ‘빅토리아 십자훈장’의 첫 수여식이 있던 다음날인 6월 27일이 국군의 날이다. 폴란드는 1920년 러시아 침공에 맞서 승리한 8월 15일에 국군의 날 기념식을 진행한다.
이외에 이스라엘은 히브리력 이야르(Iyar)월 넷째날을 우리 현충일에 가까운 개념인 ‘욤 하지카론(기억의 날)’으로 정해 기념한다. 프랑스의 혁명기념일(7월 14일)과 러시아의 조국수호자의 날(2월 23일)도 우리 국군의 날과 같은 개념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국군의 날 제정 취지가 따로 존재하지만, 더 상징적 의미에서 38도선 돌파설이 지난 70여 년 동안 회자되며 국민에게는 더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계용호 국방사 부장은 “국군의 날 제정 취지는 육·해·공군, 해병대가 모두 창설돼 국군이 완성된 날이라는 의미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라는 의미도 사실상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건군 76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펼친다. 정부는 2년 연속으로 이뤄지는 시가행진을 통해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장병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K방산 위상을 떨치고자 국산 명품 무기들을 총출동 시킨다.
특히 올해는 기존에 없던 호국영웅 카퍼레이드를 통해 그들의 희생·헌신을 기리는 이벤트도 함께 열린다. 동시에 전 국민이 직접 시가행진에 참여해 군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한반도 위기감을 조성하고자 도발 수위가 높아지는 북한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가 담긴 대응 능력을 과시한다.
남북이 갈라져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만 이 같은 시가행진을 펼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계 주요국도 국군의 날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에 군사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중 25개국(67.6%)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위스, 슬로바키아, 독일, 칠레 등 12개 나라는 도보행진 위주의 소규모 행사다. 반면 나머지 13개 나라는 1500명~1만 명 수준의 도보 부대와 100~200여 대 전차·항공기를 동원한 대규모 행사를 펼친다. 항공기 편대비행과 에어쇼 등도 병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