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법원 자사주 매입 판결도 전에 이사회 소집 '꼼수' [시그널]

2일 오전 9시, 자사주 공개매수 결의할 듯
가격·매입규모 먼저 알려 MBK 공개매수 방해
6개월 못팔고, 비싼 가격 사면 배임 논란

고려아연이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공개매수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아연이 배임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취득을 추진한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 들여져 공개매수 기간 중 자사주 매입이 금지될 상황을 대비해 판결 전에 이사회 소집을 강행하는 꼼수를 부렸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최 회장 명의로 오는 2일 오전 9시 이사회를 개최한다고 이사회 구성원에게 통지하고 법원에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이 제기한 공개매수 기간 중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사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정관은 이사회 소집기간을 하루로 규정하고 있어 언제든지 신속하게 이사회 소집이 가능하다.


이사회 소집 통지 후 법원 제출 서면에도 ‘이사회에서 만약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등의 방법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으로 결정될 경우에는 그 취득 수량을 결정하고’라고 명시됐다. 즉, 이사회 소집 목적이 공개매수 방식의 자사주 매입을 결의하겠다는 얘기다.


특히 고려아연은 가처분 판결에 지더라도, 대항공개매수가 아닌 공개매수 기간 이후의 새로운 공개매수 방식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하며, 이를 위한 이사회 결의를 현 공개매수 기간 중에 단행하겠다는 뜻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 결의 사항을 먼저 공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자사주 매입 계획을 사전에 알리고 MBK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자사주 매입을 공개매수 이후에 한다면, 이를 위한 이사회 소집 및 결의 역시 공개매수 이후에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사주 매입 가격은 공개매수 가격인 75만원 보다 높은 가격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매입한 자사주는 6개월간 팔 수 없다. 공개매수 종료 후 주가가 공개매수전 가격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고려아연이 비정상적인 높은 가격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회사에 큰 손실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법조계에서는 주주환원을 위한 자기주식 취득이라면 추후 시장가격에 따라 신탁방식으로 매수해도 되는데, 굳이 높은 가격으로 공개매수 방식으로 취득하는 것은 2.2% 주주에 불과한 최 회장의 보호를 위한 것이어서 회사 재산의 사적 유용이고 배임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며 “이사회 결의를 공시함으로써 이를 일반에 공개해 사실상 대항공개매수의 공고와 같은 효과를 보겠다는 뜻"이라며 "이는 자본시장법 제140조 별도매수금지 규정 취지에 반할 뿐 아니라 시세조종의 의도 내지 배임의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가처분 결정에 앞서 이사회 소집을 강행하는 것 자체가 최 회장이 대항공개매수를 위한 외부 자금 모집이 불가능해졌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윤범 회장 측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2일 이사회가 열린다면 곧장 자사주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할 방침이다. MBK는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자고 자기 돈 한 푼 안들이고, 조 단위에 달하는 회삿돈을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심각한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무리수를 강행하는 경우, 자기주식 취득 금지에 관한 추가적인 가처분 등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