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대선의 주요 경합주인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등을 할퀴고 지나가면서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재난 정치’에 뛰어들었다. 대응을 소홀히 했다가는 표를 빼앗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서부에서의 일정을 취소하고 워싱턴 연방재난청(FEMA)을 방문했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 현장을 찾아 현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9월 30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지난 주말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에서 선거 자금 모금 행사 등을 소화한 해리스는 이날 오전에도 네바다주에서 선거 일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를 취소하고 FEMA를 찾았다. 해리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재건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계속하겠다”며 “최우선 순위인 구호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리스는 자신이 지난 며칠간 허리케인 관련 정기 브리핑을 받았고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등 피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다수와 대화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피해가 집중된 조지아의 발도스타를 찾아 “트럭에 주민들을 위해 구호품과 휘발유를 싣고 왔다”며 “통신이 끊긴 지역에 스페이스X의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제공하기 위해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 대화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현장에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트럼프는 “(해리스) 부통령은 돈을 구하기 위해 어디선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여기(허리케인 피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바이든과 해리스를 두고 “미국인들이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테네시·앨라배마와 남부 다른 곳에서 익사하도록 뒀다”고 날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잘못된 주장을 펼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는 공화당 소속 조지아 주지사인 브라이언 켐프가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하려고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연방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날 백악관은 바이든이 조지아 등 피해 지역 지자체장들과 통화했다고 밝혔으며 조지아 주지사도 통화 사실을 확인했다.
대선 후보 진영이 이처럼 헐린 앞에 민감한 것은 미국에서 자연재해, 특히 허리케인이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을 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공화당은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WP는 “허리케인에 대한 대응은 종종 행정부의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번 허리케인으로 미국에서는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실종자도 600명을 넘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