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기업인 무더기 증인 채택…망신주기 국감 악습 벗어나야

이달 7일 시작되는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소환된다. 17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800개에 육박하는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업무 실태를 파악하고 감시·견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관련 인사들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기업인들을 줄줄이 불러놓고 병풍처럼 세워두거나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며 망신을 주는 악습을 반복해왔다. 온종일 기다린 기업인들에게 주어진 발언 시간이 고작 몇 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들이 ‘야단’만 맞고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지역구 민원 해결을 목적으로 기업인을 부르는 일도 많다고 한다. ‘기업인 벌세우기’ ‘국감 갑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국감 고질병은 올해도 되풀이될 조짐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국감에서 증인 108명, 참고인 53명 등 역대 최대 규모인 161명의 출석 명단을 확정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장이 참고인으로, 김흥수 현대차 부사장이 증인으로 소환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장재훈 현대차 사장을 증인으로,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부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참고인으로 결정하는 등 총 35명을 부르기로 했다. 정무위원회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환경노동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도 다수의 기업인들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했다. 김영섭 KT 대표이사처럼 복수의 상임위에 겹치기 출석해야 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반도체·미래차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펼치기도 바쁜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회로 불러 벌세우고 망신을 주는 것은 당장 경영에 차질을 줄 뿐 아니라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는 행태다. 국감은 입법부가 행정부 등의 정책을 검증·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다. 국감이 기업인에 대한 ‘군기 잡기’의 장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및 김건희 여사 의혹을 둘러싼 정치 공방전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국감의 취지에 맞지 않다. 22대 국회는 ‘망신 주기’ ‘정쟁 국감’의 구태에서 벗어나 경제 살리기와 국가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정책 국감’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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