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사 한발씩 물러나 ‘2026년 증원 재논의’로 대화 물꼬 터야

의대 증원을 놓고 극한 대치를 해온 정부와 의사들이 미묘한 태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공의 여러분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의정 갈등 이후 처음으로 전공의들에게 사과했다. ‘의료인력수급 추계기구’를 설치하고 의사 인력 추계 위원의 절반 이상을 의료계 추천 인사로 채우는 양보안도 제시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이례적으로 “정부가 미안한 마음을 처음 표현해 긍정적 변화로 생각한다”며 “내년도 의대 교육의 파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026년도부터는 감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장해달라”고 했다. 새로운 요구 조건을 내걸었지만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은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향해 한걸음 다가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의사 단체 대부분은 ‘추계기구’에 참여할 인사 추천에 부정적이고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사태가 시작된 지 벌써 7개월이 넘었다. 의료계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과 휴진 등 강경 투쟁 카드를 거의 대부분 썼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현장에 남은 의료진은 피로가 누적돼 한계 상황에 이르렀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 등은 더 악화하고 있다. 의사들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골든타임’을 더 낭비하면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국민 건강권 보호에 앞서는 가치는 없다. 정부와 의사들은 이제라도 한발씩 물러나 ‘2026년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를 고리로 삼아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 것이다. 의사들은 여야의정 협의체와 추계기구에 참여해 의대 증원 규모와 필수·지역 의료 강화, 의료수가 보상 체계 개선 방안 등을 놓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와 의사 단체들은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도 설득해야 한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응급실 사법 리스크 경감 등을 속도감 있게 시행해 의료계의 불신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의정 갈등 해결의 주도권을 놓고 불협화음을 낼 게 아니라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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