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7분에 달하는 구스타프 말러 제1번 교향곡 ‘거인’의 마지막 악장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8명의 호른 연주자들이 힘찬 포효의 멜로디를 쏟아냈다. 수직의 활강을 반복하며 온갖 기를 끌어당긴 듯한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경의 손 끝에 따라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절정을 향해 갔다. 트럼펫이 합세하고 트럼본이 장중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마침내 지축이 흔들리고 폭발하는 듯한 연주가 끝났을 때 파파노 경이 입은 짙은 회색 차이나 카라 상의가 흠뻑 젖어 있었다.
파파노경은 런던심포니(LSO) 상임 지휘자로 지난 여름 공식 취임한 뒤 처음으로 진행한 내한 공연에서 ‘거인의 매직’을 입증했다. 절정으로 향하기까지의 빌드업 과정에서 어느 하나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 콘트라베이스가 포문을 여는 3장을 관통하는 장중하고 차분한 정서는 이 곡의 백미로 꼽혔다. 콘트라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등 현악기들의 선율이 합일 될 때 개별 악기의 개성이 살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협연자로 나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자왕과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은색 홀터넥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유자왕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은 덜 돋보이는 곡이지만 LSO는 섬세하게 피아노 연주를 뒷받침했다. 이윽고 2악장에 이르러 유자왕의 터치는 더욱 섬세해졌고 바순과의 호흡은 유려했다. 관객들의 환호에 세 번의 인사와 두 개의 앙코르곡을 화답한 그는 재즈의 대부인 데이브 브루백의 ‘워싱턴 스퀘어의 가을’을 리드미컬하게 표현했다. 두번째 곡인 장 시벨리우스의 에튜드 2번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뜨거운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한 클래식 관계자는 “지금까지 들었던 말러 1번 교향곡에 대한 인식을 지우고 새롭게 알게 되는 수준이었다”며 “앞으로 파파노 경과 LSO가 함께 만들어 갈 모습이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