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 타고난 인간, 어떻게 惡을 알게됐나 [북스&]

■선악의 기원(폴 블룸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생후 6~9개월 자애로운 감정 형성
동정·연민 등 도덕성 싹틔우지만
특정시점 지나면 '혐오' 감정 개입
인종·성별·계층간 갈등으로 확산
어릴때부터 넓은 이타성 키워줘야

/연합뉴스


도덕 철학자들이 종종 인용하는 ‘폭주 전차 딜레마’ 사례가 있다. 두 가지의 다른 버전의 시나리오 중 첫 번째는 제어 불가능한 전차가 달리는 선로에 다섯 사람이 묶여 있고 반대편 선로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전차는 반대편 선로로 이동하게 된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폭주하는 전차가 달리는 선로 위에 다섯 사람이 묶여 있는 상황은 동일하지만 전차를 세울 방법이 달라진다. 처음 보는 덩치가 큰 사람을 선로로 밀어내 전차를 세우는 방법이 등장한다. ‘스위치를 누르는 일’과 ‘처음 보는 남자를 미는 일’의 결과는 한 명을 희생해 다섯 명을 살린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스위치는 주저 없이 선택하지만 남자를 미는 일에는 머뭇거린다. 이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처음 제시한 ‘이중 효과 원칙(DDE)’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공익을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 의도한 결과여서는 안 된다는 것.


많은 이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에게 도덕적 나침반이 내재된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발달심리학자이자 언어심리학자인 폴 블룸 예일대 교수는 인간이 감정의 논리에 지배받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만 직접 손을 대서 남자를 밀친다는 생각이 스위치를 누른다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선과 악의 기원(21세기북스 펴냄)’에서 어린 아이들은 이미 도덕성의 일종인 타인에 대한 이타심과 동정, 연민 등 감정적 반응을 온전히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는 ‘그저 아기들 : 선과 악의 기원(Just Babies : The origins of Good and Evil)’로, 아이들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춘다. 배우자이자 예일대 유아인지센터장인 캐런 윈과 함께 3개월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관찰, 실험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사진 제공=21세기북스


그가 생각하는 도덕성은 모든 사회적 차원의 자애로운 감정을 말한다. 그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생후 6~9개월 사이 도덕성에 대한 이해력을 형성한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도와주려는 의사를 표현하고 우울하거나 낙담한 반응을 보이면 이에 따라 비슷한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블룸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가 엄마에게서 받는 돌봄을 통해 분비되는 옥시토신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긋한 기분이 들며 친화적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경제학 게임에서도 옥시토신을 투여 받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더욱 신뢰를 보이고 관대해져 ‘도덕 분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에게 좋은 행위에 대한 감수성보다 나쁜 행위에 대한 감수성이 더 일찍 출현하고 강력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도덕 감각’은 먼저 타인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이후에 특정 시점이 되면 자기 내면으로 향한다. 혐오 역시 감정이 개입되면 더욱 혹독해진다. 어릴 때만 해도 아이들은 분비물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어느 시점에 혐오감을 갖게 된다. 이 혐오감에 감정이 개입되면 더욱 혹독한 판단으로 이어져 인종, 성별, 계층 차이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행동들이 더욱 유해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일관적으로 말한다. 어린 아기도 가족을 비롯해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이타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이타성의 여지가 줄어드는 부분은 외집단에 대해서다. 그때부터는 감정이 배제된 채 수학적 계산을 하듯이 ‘공평성’ 등 지식을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 감정적 혐오감이 더해진다면 인간은 더욱 혹독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린 아이 때 갖는 연민과 동정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다름으로 인해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도 공감을 바탕으로 보다 넓은 이타성을 키워가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2013년에 이미 출간된 이 책을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번역해 소개한는 이유로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내놓은 말을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치졸한 공평이 아닌 고결한 공정을 추구합시다.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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