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원 단위 ‘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이 MBK파트너스·영풍(000670)의 공개매수가 상향으로 또 한 번 분수령을 맞게 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파격적인 조건에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듯했지만 MBK·영풍이 최 회장과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공개매수를 연장하면서 또 한 번 치열한 지분 경쟁을 벌이게 됐다.
4일 고려아연 주가는 MBK·영풍의 공개매수가였던 75만 원을 훌쩍 넘은 77만 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개장 직후부터 급등한 주가는 오후 들어 MBK·영풍이 공개매수가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상승 폭을 더욱 키웠다.
MBK·영풍이 공개매수 가격을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과 동일한 83만 원으로 선정한 것은 같은 가격이라면 고려아연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측의 공개매수 종료일은 이달 23일로 영풍·MBK 측의 마감일인 14일보다 9일 늦다. 공개매수가가 이대로 유지될 경우 매도자는 MBK·영풍 측에 주식을 우선 매도할 가능성이 크다.
최소 매수 수량 조건을 삭제한 것 역시 향후 지분율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로 사들인 자사주(최대 지분 15.5%)를 모두 소각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번 공개매수 후 영풍·MBK 측은 매수한 주식이 고려아연 지분율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최 회장 측은 그렇지 못하다. MBK·영풍 측이 공개매수를 통해 약 5%의 지분율만 높여도 최 회장 측보다 높은 지분율을 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사주가 소각되면 양측 간 지분율 차이는 더 벌어진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각종 세금과 매수·매도 시점에 따른 차익, 장기 경쟁력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 고려아연과 MBK 측 중 하나를 골라 청약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측이 똑같은 조건을 내건 만큼 이제는 진정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 경쟁력을 떠나 어느 쪽이 내세운 성장 가능성에 베팅할 것인지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 측이 다시 공개매수가를 올리는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MBK·영풍이 진행하는 공개매수에 대한 참여 유인을 낮추려면 결국 매수가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 최 회장 측은 이달 7일 열릴 영풍정밀(036560) SPC인 제리코파트너스 이사회에서 공개매수가 상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높이고 매입 지분을 늘리는 방안을 고심 중으로 알려졌다. 현재 MBK·영풍 연합, 최 회장 측·베인캐피털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이 각각 33% 내외로 비슷한 상황인 만큼 1.85%의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영풍정밀 지분을 누가 가져올지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MBK가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실패하더라도 영풍정밀만 가져가면 고려아연 지분율을 최 회장 측과 같은 수준으로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 측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성공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더라도 MBK가 영풍정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양측 고려아연 지분율은 30%중반대로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양측의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MBK·영풍 측은 특히 최 회장 측의 자금 조달 방식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MBK는 보도자료를 내고 “자사주 매입을 위해 고려아연이 3조 1000억 원(기업어음 CP 발행 4000억 원+차입 2조 7000억 원)을 빌리면서 부채비율이 기존 36.5%에서 95%로 높아진다”며 “고려아연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변수도 만만찮은데 MBK·영풍이 법원에 신청한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금지 가처분 결과도 그 중 하나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을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종료일(이달 23일) 전에 인용하면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는 중단된다. 법원의 심문기일이 18일이라 가처분 신청 결과는 이달 21일 이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공개매수신고서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후 공시까지 돼 법원에서 최 회장 측 공개매수 자체를 무산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최 회장 측은 이번 가처분 신청에 대해 “영풍·MBK파트너스가 (자사주 취득과 관련한 가처분 기각 등)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또 한 번 가처분 신청으로) 시세조종 및 시장 교란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금융 당국은 양측의 허위 사실 유포 여부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향후 경영권 분쟁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