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년만에 최대폭 급등…美경제 연착륙 '줄타기'

WTI 5.15%↑ 배럴당 73.7弗
고용 안갯속 물가 불안 겹쳐
美 국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
금리인하 속도·폭 조절 난항
원·달러 환율도 14.4원 올라

이란 해역의 석유 생산 시설에서 이란 국기 옆으로 가스 화염이 타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 지역 정세 악화로 국제유가가 뛰어오를 조짐이 나타나면서 주요국 연착륙 전망의 바탕이 됐던 물가 개선세가 지연되거나 반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하기가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현지 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3.61달러(5.15%) 급등한 배럴당 73.71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오름폭은 지난해 10월 13일(5.77%) 이후 가장 크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12월 인도분 가격은 3.72달러(5.03%) 뛴 배럴당 77.62달러에 마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유가 급등에 불을 지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타격하려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논의 중(in discussion)”이라고 말했다. TD증권의 대니얼 갈리 수석상품전략가는 “바이든의 발언은 유가를 밀어 올리는 촉매제가 됐다”며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은 걸프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동 지역 긴장은 날로 격화하는 양상이다. 9월 27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하고 이란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달 1일 이스라엘에 18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다. 이란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공급 시설을 정조준할 경우 이란의 원유 수출 감소뿐 아니라 호르무즈해협까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스웨덴 금융기관 SEB의 최고상품분석가인 비야르네 실드로프는 “만약 호르무즈해협의 공급망 혼란이 시작되면 원유 가격에 위험 프리미엄이 치솟을 것”이라며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국채금리도 일제히 상승했다. 기준금리 변동 전망을 반영하는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6.2bp(1bp=0.01%포인트) 오른 3.716%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도 6.4bp 올라 3.852%에 마감됐다. 로이터통신은 “국채금리가 오르고 단기물과 장기물의 수익률 격차는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투자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연준 입장에서도 금리 인하의 속도와 폭을 결정하기가 까다로워지게 됐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금 경제는 A학점이지만 전환기에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낮추고 싶지만 동시에 고용시장은 강하게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까다로운 균형 잡기가 필요한 지점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환율 시장도 원·달러 환율이 14원 넘게 상승하며 불안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14.4원 오른 1333.7원에 거래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외환시장 개장 이후 14원 넘게 오른 뒤 오전 내내 1331~1335원 사이에서 등락을 오갔다. 지난달 30일 1303.40원까지 내렸지만 2거래일 만에 30원 넘게 폭등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자 4일 긴급점검회의를 열어 에너지 수급 및 수출입 상황 등을 살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며 신속 대응 체계를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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